3.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
수세기동안 신학자들은 잘못된 상식을 제공함으로써 신의 존재를 옹호해왔다. 그의 명성을 고려하자면 망설임이 없지않아 있지만 13세기, 토마스의 아퀴나스의 공허한 다섯가지 증명이 그러하다. 그 다섯가지 증명은 모두 무한회귀(≒ 무한후퇴,infinite regress)라는 개념을 수반한다. 하나의 질문의 답으로 선행질문이 제기되고 그런 반복은 무한히 계속된다.
스콜라철학의 대부, 토마스 아퀴나스
原動者.
움직여지는 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그러나 A라는 것이 B를 움직이는 것이고 B라는 것이 C를 움직이는 것이라는 식으로 계속 올라갈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은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어떤 것을 가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 부른다.
p.123
原因없는 原因
누구도 원인 자체가 원인인 것에 대해 아는 바 없다. 그러나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을 터, A의 원인이 B이고 B의 원인이 C라는 식으로 계속 올라갈 수는 없다. 결국 최초의 원인을 통해 이러한 회귀는 종식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 부른다.
必然的 存在
모든 관찰 대상은 본질에 있어 우연적이다. 즉 필연적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연적이라 함은 대상이 자신의 존재가 또 다른 어떤 존재에 의존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존재의 우연성은 그 이외의 것에 의존하지 않는 필연적인 존재가 있음을 시사해준다. 우리는 이 필연적 존재를 신이라 부른다.
p.124
무한회귀(infinite regress)라는 개념에 의존하는 이 세가지 논증은 무언가를 불러내 이 회귀를 종결시킨다.
그리고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이, 그 무언가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단순히 이름이 필요하다는 이유뿐이다. 어의 없는 명분 하나로 수상쩍은 행동을 합리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알수 없는 이유로 그것에 전지.전능.신격.창조.설계등의 속성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논리학자들은 전지와 전능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도 놓지지 않았다.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이 전능을 발휘하여 역사에 개입하여 바꿀것인지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입하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며, 따라서 전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자면, 내일 비가 올것을 안다면 그가 비를 막을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비를 막을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의도를 바꿀수 없으며 설령 이러한 의도를 바꿔 비가 오는 것을 내버려 둔다면 결국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전능한 자는 전지할 수 없으며, 같은 이유로 전지한 자는 전능할 수 없다.) 정도의 最大값 자연의 위계에서 관찰되는 사물의 단계에 근거하는 증명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은 다른 사물 보다 더 좋거나 더 나쁘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교적인 등급은 필연적으로 판단의 규정과 일치하는 절대 기준의 존재를 반증한다. 선함, 아름다움, 완전함 등의 최대값을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이것이 논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냄새가 다르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완벽한 최대 냄새를 참조해야만 서로의 냄새를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비할 수 없을 만큼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고. 비교할 특성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로 아둔한 결론이 도출된다.
p.125
설계의 意道者아마 하느님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는데 가장 잘 알려진 추론은 우주가 질서나, 설계 또는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는 감각으로부터 유도되는 것일 것이다. 아퀴나스는 우리 주위의 세상에는 목적지향적 현상(뿌리가 물을 찾고, 잎이 툭 터진 빛을 쫓듯이)이 일반적인 것으로 관찰하고 "지적능력이 없는 사물은 마치 궁수가 쏜 화살처럼 뭔가 지적인 것에 의하지 않고는 목적을 향해 진행하는 경향을 가지지 않는다.
"Things lacking knowledge do not tend towards a goal unless they are directed by something intelligent, as an arrow is by the archer" 이렇게 추론했다. 자연에는 분명 목적이 사방에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무생물마저도 내재된 조화나 질서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뉴턴은 "태양과 행성, 혜성들의 최고의 아름다운 체계는 오직 지적이며 강력한 존재가 계획하고 지배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the most beautiful system of the sun, planets and comets could only proceed from the counsel and dominion of an intelligent and powerfull Being"이라고 고 썼다.
설계논증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귀절은 부주교 페일리가 그의 자연신학(Natual Theology 1802)에 올린 글이다.
페일리는 우리가 바닥에 놓여있는 시계를 보면 우리는 금방
"그 여러 부속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짜 맞춰지고 결합돼있다(that its several parts are framed and put together for a purpose)"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그 시계를 만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추론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페일리는 논했다.
"설계자 없는 설계, 고안자 없는 고안, 선택 없는 질서 ..., 목적을 의도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목적을 향한 공헌과 관계는 있을 수 없다."
There cannot be design without a designer, contrivance without a contriver, order without choice..., subservience and relation to a purpose without that which could intend a purpose. - William Paley, Natural Theology
유명한 스코틀랜드 철학자 흄은 설계 논증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었다. 우주를 인간이 만든 공작물과 비유하는 것은 매우 취약하고 잘못될 가능성이 크며 불확실한 것이다(very weak and liable to error and uncertainty)라고 말한다.
사물이 내부에 질서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더우기 주어진 현상(질서와 같이)의 있을 법한 원인은 오직 이전의 예를 관찰함으로서만 적절하게 확인될 수 있다. 그런데 관찰 가능한 우주란 오직 하나 뿐이다.
자연신앙에 관한 대화(Dialogur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에서 흄은 '우리는 이미 완성된 세계를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 세계가 가진 질서의 원인이 신의 의도를 반영한 것인지 여부를 단정지을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논한다.
p.126
다윈은 캠브리지 시절에 페일리의 논증을 읽고 감명을 받았지만 성숙한 뒤 다윈은 그 논증을 버렸다. 그는 흄의 논증보다 더 치명적인 공격으로, 자연 선택이란 다윈의 이론의 성공으로부터 가해졌다. 이 이론은 '복합적이고 뒤얽힌 생명의 형태는 단순히 임의적인 변종에 생존투쟁이 더해진 맹목적 작용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므로 어떤 지적인 선도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제시한 것이다.
지적 설계와 인간의 생명 Intelligent design and human life 출처: http://blog.daum.net/danstin
최근에는 현대 우주론이 설계논증을 지지하고 있다.이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 인간의 생명의 출현을 허용할 뿐 아니라 촉진하도록 "정교하게 조율되어fine-tuned"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중력이 지금보다 약간만 더 강했다면 별들은 수소 연료를 훨씬 빠르게 연소하게 되어 인간생명까지 진화할 여유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또한 원자 핵을 묶는 힘이 경계에서 약간만 더 "강했어도strong" 우주에서 생명에 필요한 물이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만약 우주의 법칙이 상당히 달랐다면, 왜 법칙이 이렇게 됐을까 하고 의문을 품을 인간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인간까지 진화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물리적 수치는 순수한 임의적 작용의 확률로써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록 우리는 확률적 계산이 그 문제점으로 인해 악명을 드높이 떨치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지만, 그래도 이러한 계산이 정확하다면 이는 우주가 지적 설계의 소산이라는 생각을 뒷바침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우주가 그 자체로 생명과 지성이 출현할 수 있도록 한 어떤 것이 있는지 여부의 문제에 맞닥뜨려 있다.
p.127
스콜라철학의 창시자(Founder of Scholasticism)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1033년에 북이탈리아의 아오스타(Aosta)에서 태어났습니다.
15세에 수도원에 들어갈려고 하였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23세에 집을 떠나 알프스산을 넘어 프랑스의 노르만디의 베크에 위치한 베네딕토 수도원의 부원장이며 유명한 학자인 랜프랭크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1060년에 베크 수도원에 들어가고, 3년 뒤에 랜프랭크를 이어 부원장이 되고, 1078년에는 만장일치로 수도원장이 되어, 15년 동안 그 수도원을 유롭의 유명한 학문의 중심로 만들었습니다.
1093년에 랜프랭크를 이어서 캔터베리의 대감독이 되었습니다. 안셀무스는 교황을 지지하고 영국왕에 대항하여 두 번이나 대륙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교황과 영국왕이 화해하여 안셀무스는 캔터베리로 돌아와서 110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벡크 수도원에 있을 때에 그의 유명한 두 작품인 "Monologion(독어록)"과"'Proslogion(대어록)"을 쓰고, 캔터베리의 대감독으로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Cur Deus Homo (Why God Became man,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셨는가?)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정의 때문에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어(성육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고, 죄 없으신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만족하게 용서받게 하셨다는 '십자가의 만족설'(the satisfaction theory of the cross)을 말했습니다. 안셀무스는 기독교 교리를 이성(reason)으로 설명할려고 노력했으며, 믿음과 이성의 관계와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한 것은 유명합니다.
For I seek not to understand in order that I may believe; but I believe in order that I may understand, for I believe for this reason that unless I believe I can not understand.
믿기 위하여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믿는다. 내가 믿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는 이유 때문에 나는 믿는다.
And, indeed, we believe that thou art something, than which nothing greater can be conceived..There exists,therefore, beyond doubt, both in the intelligence and in reality, something than which a greater cannot be conceived.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는 참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 없이, 지식이나 실제에 있어서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존재하는 것이다.
Why,therefore, O vain man, dost thou rove through a variety of things in search of pleasures for thy body, and for thy mind? Fix thy love upon this One Good which comprehends all other good, and it is sufficient.
어리석은 인간이여, 왜 그대는 그대의 몸과 마음을 위한 쾌락을 찾아 여러 것들 중에 배회하는가? 모든 선(좋은것)을 다 가지고 있는 이 한 善에 그대의 사랑을 집중하라.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rsg861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
귀납적 논증 - 토마스 아퀴나스, 등
연역적 논증 - 성 안셀무스, 등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증명'
안셀무스의 사상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신(神)증명'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이성의 새로운 평가 혹은 역할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인간의 이성으로 학문의 최고 대상이자 최고의 형이상학적인 문제인 신을 인식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문적인 방법론을 '신증명' 혹은 '신논증'이라 한다.
'신증명'의 등장은 이성이 당시의 철학과 신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을 뜻하며, 아울러 인간은 신증명을 통해서 창조주인 신과 자신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을 뜻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인간은 무조건적인 신앙의 권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며, 신앙의 종복이었던 인간 이성이 재평가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이성의 해방은 결과적으로 철학과 신학을 학문으로써 더 발전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신을 증명(논증)하는 데 있어 '오직 인간의 건강한 이성 외에는 아무것도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안셀무스의 신논증 방법의 출발점에서 이성의 해방 또는 재평가가 극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안셀무스는 오직 이성만을(sola ratione) 최고의 진리인 신(神)인식의 출발점으로 상정하고서, 만일 인간이 단지 평균의 (보통의) 이성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인간은 최소한 스스로의 이성으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셀무스의 신증명은 칸트가 이름 붙인 '존재론적 신증명'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존재론적 신증명은 그의 독창적인 저작인 『프로슬로기온』의 2~4장에서 논의되는 일종의 새로운 논증 방법이다. 말하자면 엄밀한 학문적 방법을 통한 신의 현존, 달리 말해서 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안셀무스의 새로운 논증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들이 있다.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아야 하며, 논리적으로 자족적이어서 그 자체로는 논증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논증(unum argumentum)이 필요한 것이다. 안셀무스는 이러한 규칙을 가진 존재론적 논증 방법으로 신의 현존과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신앙적인 요소들을 증명하고자 시도했다.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증명'은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수도승 가우닐로(Gaunilo) 등에 의해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에는 토마스 아퀴나스나 칸트 같은 유명한 사상가들에 의해서 비판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후대의 사상가들은 그들의 비판을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 안셀무스의 신논증은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서 그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대표적인 사상가들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더불어서 13세기의 사상을 이끌었던 프란치스코회의 수장인 보나벤투라(Bonaventura), '예리한 박사(doctor subtilis)'로 유명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데카르트(R. Descartes), 라이프니츠(W. Leibniz) 그리고 헤겔(G. W. F. Hegel) 등이 있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증명 혹은 신논증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신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id quo maius cogitari nequit)"임을 인정한다. 최고로 큰 존재는 사고의 대상이자 동시에 실제로 존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신이 단지 사고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사고와 실제에 동시에 존재하는 더 큰 존재를 다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신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서의 최고의 존재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신은 단지 사고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로도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안셀무스의 신증명은 관념적이고 논리적인 질서에서 현존하는 존재의 질서로 나아간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약이 바로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정신 안의 개념의 분석을 통해서 정신 바깥의 실제적인 존재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오직 그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그 존재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gkswkdishfwk674.tistory.com/202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증명은 대략 이러하다.
1. 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에 대한 명석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이런 관념은 신을 부정하는 바보들의 오성에서도 발견된다.)2.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가 마음 속의 관념으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자.3. 실제로 존재하는 존재자는 마음 속으로만 존재하는 존재자보다 더 위대하다.4.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보다 위대하는 존재자가 실제로 있을 것이다.5. 그러나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보다 더 위대한 존재자는 없다.6.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존재자는 실제로 존재한다.정리하자면, 논증은 일단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신)에 대한 사람들이 확실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만약 그런 관념이 확실하다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에, 그런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논증이다. 이런 논증이 악명 높은 이유는 직관적으로 그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칸트가 후일 비꼬듯이, 무일푼의 가난뱅이가 주머니속의 100탈러에 대한 관념을 명석판명하게 갖는다고 해서 그가 실제로 100탈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이성적으로 반론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안셀무스의 논증은 도착적이다. 관념과 실재의 선후를 뒤바꿔버리는 논증인데다가 단순히 오류들과 달리, 쉽게 몰아낼 수 없는 증상과도 같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안젤무스의 논증에 대한 최초의 반론의 안셀무스의 동시대인인 "고닐로"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에 우선 첫째 반론은 안셀무스 논증의 첫째 전제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에 대한 확실한 관념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확실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존재자에 대해서 갖는 확실한 관념에 비해 덜 확실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꽃과 나무와 돌에 대한 확실한 관념을 갖는다. 그러나 신에 대해서 그만큼이나 확실한 관념을 갖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이에 대해 안셀무스로부터 즉각적인 반론이 나왔다. 즉 신에 대한 확실한 관념을 갖기 위한 조건은, 오로지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 정도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확실성에 대한 요구치가 신의 경우에 있어 낮을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러니까 어떻게 신이 꽃과 나무와 돌과 동급에 놓여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라는 정도만으로 우리는 신에 대해 충분히 확실한 관념을 갖는다는 것이 안셀무스의 주장이다. 안셀무스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은 고닐로의 두번째 반론이다. 고닐로는 안셀무스의 논증의 구조 자체가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논증의 대상을 신이 아닌 다른 허구적인 것들로 바꾸어도 그 논증은 얼마든지 성립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가장 위대한 가능한 섬을 머릿속에 상상한다면, 위대함은 실재함을 함축하기에, 그것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얼마든지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안셀무스가 아닌, Plantinga라는 다른 저자가 재반론을 펼치는데, 섬이라든지 하는 유한한 사물들은 최대치의 속성(전지전능 혹은 절대선과 같은 속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론적 증명의 논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식, 힘, 선함 등과 같이 존재에 있어서의 위대함을 강화하는 성질들은 전지, 전능, 절대선 등과 같은 내재적인 최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섬이나 나무 등의 사물에 있어서 나타나는 ‘위대함’ 개념의 무한 확장(가장 큰 섬보다 더 큰 섬의 무한 반복적 사유 가능성)이 정지될 수 있고 따라서 '가장 위대한 섬'과는 다른 존재성으로 신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존재론적 신증명에 대한 반론들에 안셀무스나 Plantinga나 똑같은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존재론적 신증명을 오로지 신만을 위한 기성품(Ready Made)으로서 예비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 논증은 참거짓을 가리는데 쓰일 수 있는 보편적인 틀이다. 그런데 어떤 논증은 오로지 특정한 대상에만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존재론적 증명의 맹점이다. 가령 도대체 신에 대한 관념이 어디가 확실하냐는 반문에 그런 확실성은 오로지 신만을 형용하기 위해 예비된 '확실함'이라고 응수를 한다든지,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도 결국 신 말고는 있을 수 없다는 논리도 그러하다. 사실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를 패러디할만한 신 외의 다른 사물들로 논증이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최대치"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사실 이 개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개념이다. 환언하자면, 최대치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로운 표상을 지닌 개념이 아니라, "논증을 신 외의 것으로 돌리지 마!"라는 명령이 구현된 비표상적 개념이다. 비트겐슈타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최대치라는 개념을 학습할 때 그것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안셀무스와 같은 타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이런 단어를 사용할 때 부모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그런 단어를 잘못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최대치라는 개념은 바로 신 외의 대상에 대해 증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수행문적 기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셀무스의 증명은 신증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명령이란 말인가?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거부할 수 있을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출처 : http://blog.naver.com/paxwonik/40029915871
p.131
일리아 무신론 철학자 J. L. 매키(J. L. Mackie)는
《유신론의 기적(The Miracle of Theism)》에서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에 대하여 명확하게 반박했다.
"철학자는 상식을 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p.132
더글러스 개스킹의 신의 비존재 증명
1. 세계창조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업적이다.
2. 그 업적의 가치는 고유의 특질과 창조자의 능력의 산물이다.
3. 창조자가 무능력할수록(또는 조건이 불리할수록) 그 업적은 더 인상적인 것이 된다.
4. 창조자에게 가장 가공할 불리한 조건은 비존재일 것이다.
5. 따라서 우주가 존재하는 창조자의 산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즉,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창조하는 존재 말이다.
6. 따라서 존재하는 신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존재보다 더 위대하지 않을 것이다.
7. 즉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p.133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연애대위법] 중 "신의 존재에 대한 수학적 증명을 발견한 노인"
m/0 = ∞
m/0 x 0 = ∞ x 0
m = ∞ x 0
양상논리 (Modal Logic)
....... "게임의 양상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할 때의 "양상" 은 논리학에서 판단의 확실성. 곧, 일정한 판단의 타당한 정도를 의미한다......... 가능·필연 등 양상에서 언급하는 말이 들어간 명제로 구성된 논증의 구조를 연구하는 논리학 ......판단의 확실성을 가리키는 논리학 용어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양상을 필연성 ·우연성의 두 가지로 구별하였고, 전통적 형식논리학에서는 여기에 가능성 ·불가능성을, 칸트는 현실성 ·비현실성을 추가하여 모두 3그룹 6개로 구별하였다. ..... 명제논리 (Propositional Logic)
의 논리식 (well formed formula)
에 연산자 필연성 (L, 필연과 우연) 과 가능성 (M, 가능과 불가능) 을 추가한 것이 양상논리 (modal logic) 이다............ "내년에 나는 프랑스에 유학간다." 는 명제는 현재로서는 진도 아니고 위도 아니다. 그것은 진위 '부정'이다. 그러나 가능한 일이다. 미래에 관한 모든 명제는 가능 또는 불가능 명제이다. '가능'은 '필연 (필연 또는 우연)', '실연 (현실성 또는 비현실성)' 등과 함께 양상에 속한다. 여기에 양상논리 (modal logic) 가 성립한다. ... 양상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를 다루는 것이다 : 어떤 명제의 참, 거짓 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대 논리학의 원론적 부분은 명제논리 (propositional logic) 이다. 이 명제논리의 기초 위에 술어논리 (predicate logic)
도 관계논리도 성립하는 것이다. 형식논리는 명제의 진위에 관한 검증이기도 하다. 진리치가 진위의 두개일 때 이치논리 (two value logic) 라 하고 세 개 이상의 논리를 다치논리 (many-valued logic) 라 한다. 현대의 기호 논리학 (symbolic logic)
에서는 명제의 진위에만 값을 인정하는 ‘2치 논리학’ 에 대하여 진위의 중간단계를 인정하는 ‘다치 논리학’ 의 형태로 양상 논리학을 정비 하려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Aristoteles는 "내년에 사라미스 해전이 있을 것이다" 라는 명제로써 양상문제를 제기한 바 있고, 그 전후에 Megara 학파에서도 그 후에 Stoa 학파에서도 이 문제를 연구한 바 있으나 Aristoteles의 논리를 이치에 국한시킨 전통의 권위에 가려져서 빛을 보지 못하였다. 현대 논리의 커다란 과제로서 양상의 문제를 제기한 이는 H. McColl (1837~1909) 의 시론을 공리화한 C.I. Lewis (1883~?) 이었다. 그는 Russell 의 단순함언 (material implication) 에 대해 '엄밀함언' (strict implication) 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양상논리에로의 길을 열었을 뿐 아니라 Langford 와의 공저 Symbolic Logic (1932) 에서 양상체계를 확립하였다........ (소광희 1985).
Modal logic 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necessary) 진리와 우연적인 (contingent) 진리 사이를 구분하는 (distinguish) 논리의 한 형태이다. 만일 2 + 2 = 4 와 같이 논리적 모순이 없다면 그것은 필연적이다 ; 반면에 "지구의 반이상이 물로 덮혀 있다" 와 같은 경우에 발생하는 것은 우연적인 것이다. 하나의 문장이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참이라면 그것은 필연적 진리이다. 만일 그것이 우리 세상에서는 우연히 참이지만 모든 (all) 가능한 세계에서 참인 것은 아니라면 그것은 우연적인 진리이다. 어떤 (some) 가능한 세계에서 (반드시 우리 세상은 아니더라도) 참인 문장은 가능한 (possible) 진리라고 부른다.필연성 (necessity) 과 가능성 (possibility) 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드 모르간 법칙과 같은 관계를 보인다 :
"It is not necessary that X" is equivalent to "It is possible that not X."It is not possible that X" is equivalent to "It is necessary that not X.Modal logic 는 명제논리 (Propositional Logic)
의 논리식 (well formed formula)
에 연산자 필연성 (L) 과 가능성 (M) 을 추가한다. 두 개는 서로간에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Lp (necessarily p) has the same meaning as -M-p (not possible that not-p)
Mp (possibly p) has the same meaning as -L-p (not necessarily not-p)
Modal logic 을 사용하기에 편리한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서 명제논리에 어떠한 공리 (Axiom) 들이 정확하게 추가되어야 하는 가는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되어왔다. Saul Kripke 이후에 K 라고 불리워진 하나의 weak system 은 다음과 같은 것만을 추가한다 :
Necessitation Rule: If p is a theorem of K, then so is Lp.
Distribution Axiom: If L(p → q) then (Lp → Lq)
이러한 규칙들은 p 의 필연성으로부터 p 가 실제로 그 case 가 되게끔 하는 공리가 없다. 따라서 보통 다음과 같은 것이 추가된다 :
Lp → p (If it's necessary that p, then p is the case)
하나의 modal 연산자가 또다른 연산자의 범위에 분포하는 경우에는 더 많은 혼란스러운 이슈가 발생한다 -does Lp imply LLp, 예를들면 ? (필연적인 진리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인가?) .............. (Wikipedia : Modal logic)
양상 논리는 일차 술어 논리의 표현력을 확장하는 다양한 논리 체계들을 아우르는 용어다. 양상 논리는 필요성 (Necessity) 과 가능성 (Possibility) 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어 표현으로 보면, "it is necessarily that ~" 과 "it is possibly that~" 을 표현하는 논리 체계다. 이 두 가지 표현을 기술할 수 있는 최소 논리는 K 라는 이름을 가진 논리다. K 는 이 논리를 만든 사울 크립케 (Saul Kripke) 의 성씨 첫 자를 딴 것이다. K 를 기반으로 다양한 표현력 확장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M, S4, S5 등 다양한 양상 논리 시스템이 제시되었다. 또 한 편으로 신뢰 (Belief), 시제 (Tense), 의무 (Obligation) 사항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양상 논리 체계들이 만들어졌다. ...........
출처 : http://www.aistudy.com/logic/modal_logic
p.134
18세기 러시아의 대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무신론자 디드로에게 질문했다.
"제가 연구한 결과로는 (a+bn)/n=x 이므로 신은 존재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141
네커의 정육면체를 설명하자면,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도형 중에서 정육면체의 투시도형을 가리키며, 꼭지점 A가 관찰자 쪽으로 돌출한 정육면체로 보이는 경우가 있으며 꼭지점 B쪽이 돌출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반전성 원근 착시도형(反轉性遠近錯視圖形)의 하나라고 말한다.
<<성경 왜곡의 역사 _저자서문_>>
저자 : 바트 어만
1950년대 중반, 미국의 심장부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나는 매우 보수적인 곳에서, 그리고 매우 보수적인 시절에 태어나서 자란 셈이다. 나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성장기를 보냈다. 5학년 때부터 우리 가족은 캔사스 주 로렌스에 잇는 성공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많은 성공회 교회들이 그렇듯이, 이 교회 역시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회였다. 우리 교회 예배 분위기는 진지하고 엄숙했으며, 성서는 예배의 일부에 속했다. 그러나 성서를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았다. 교회의 전통 및 상식과 더불어, 성서는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여겨졌다. 주일학교에서 교사들은 실질적이며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루거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더 중점을 두고 가르쳤다. 어머니는 성서를 꽤 읽으셧고, 자녀인 우리들이 성서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교리'보다는) 윤리적인 교훈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종종 확인하셨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성서가 신비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종교에나 있는 그런 중요한 책 말이다. 그러나 배우고 익혀야 할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성서가 유물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왠지 하나님이나 교회나 예배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혼자 성서를 읽거나 연구할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내 생각이 급격하게 바뀐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거듭남'을 체험했고, 그 일은 내가 다니던 교회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모범생이긴 했지만 전형적인 '주변인'이었다. ...여러가지를 해보았지만 공허하였다. 일요일마다 신부님의 잔일을 돕는 복사 노릇을 하는 착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돌아가더라고 공허함을 달랠 수는 없었다. 사실 토요일 밤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일날 아침만큼은 그런 착한 아이여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은 사춘기에 겪는 외로움이었다. 나는 그것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으며, 틀림없이 내 삶에 무언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기독청소년선교회라는 교내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 모임은 학생들 집에서 이루어졌었다. ... 그룹의 리더는 전업으로 이런 사역을 하는 스물 몇 살 쯤 되는 부루스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청소년선교회 모임을 지역별로 결성했고, 고등학생들 회심시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렇게 거듭난 아이들을 특별한 성서연구 모임과 기도회 등에 참석하도록 유도했다. 부루스는 자유자재로 성서를 인용했는데, 내가 보기엔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내가 성서를 신비롭고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성서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하는 모든 말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렸다. 또한 거기에서 경험했던 일들은,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우리 교회의 예배 방식은 나이 든 기성세대에나 어울리는 구태의연한 것이었을 뿐, 재미나 모험을 동경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공허함을 느끼는 십대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 짧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나는 브루스를 알게 되었고, 그가 전해준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였으며, 예수님을 내 마음에 초청했고,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열다섯 살이었으며, 당시의 거듭남의 체험은 내게 새롭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이때부터 평생에 걸친 나의 신앙 여정은 시작되엇다. 그 길은 수많은 굴곡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때로는 막다른 길인 것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그 지점은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길모퉁이인 적이 많았다. 하여간 그런 길에 들어선 지 이제 30년이 훌쩍 넘었다. 이와 같은 거듭남을 경험한 우리들은 스스로 '진짜' 기독교인이라고 여겼다. '진짜 기독교인' 이라는 말에는, 그저 당연히 교회에 출석하지만 사실은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전혀 진실하지 않으면서 그저 흉내만 내고 있었던 사람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기독교인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우리 자신들을 이런 보통 기독교인들과 구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성서연구와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성서연구가 그랬다. 부루스는 정말 성서 그 자체였다. 시카고에 잇는 무디 성서 대학 출신인 브루스는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질문에 성서를 인용해 대답할 수 잇을 정도였다. 물론 우리가 결코 생각해 내지도 못할 질문에 대해서도 성서를 인용하며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금새 그의 성서 인용 능력을 부러워하게 되었던 나 역시 성서연구에 몰두했다. 성서를 읽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중요한 성구를 암송하기도 했다. 부루스의 설득으로 나는, 내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일과 기독교 신앙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내가 무디성서대학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성서를 연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특별히 생활 방식의 급격한 변화가 뒤따랐다. 무디성서대학에는 학생들이 서명으로 서약해야 하는 윤리 '규범'이 있었다. 술도 담배도 춤도 카드놀이도 영화도 일체 접하지 않고, 오로지 성서만 죽도록 파고들겠다는 서약이었다.
그 학교는 일종의 기독교 신병훈련소 같았다. 어쨋뜬, 나는 어설픈 신앙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무디성서대학에 지원해 합격했다. 1973년 가을, 나는 그 학교에 입학했다. 무디성서대학에서의 경험은 강력했다. 나는 성서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으며, 그것은 곧 성서연구 및 조직신학 과목을 많이 수강하는 것을 의미했다. 다양한 과목을 수강했지만, 거기서는 모든 교수들과 학생들이 서명 동의한 단 하나의 관점만을 배웠다. 교수들이나 학생들이나 다음과 같은 서약문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성서는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서에는 어떤 실수도 없다. 성서는 그 글자 하나까지도 완전히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다." 즉 '축자영감설'에 대한 전적인 동의였다. 내가 수강한 모든 과목은 이런 관점을 전제로 했고, 또 이것을 가르쳤다.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전부 오도된 것이거나 아니면 이단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세뇌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회지향적인 성공회 신자로서 자란 나로서는, 성서를 보던 줏대없는 견해로부터 엄청나게 '진일보'한 것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저한 기독교 신앙이었다. 그러나 성서가 그 글자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축자영감설에는 명백한 문제점이 있었다. 무디성서대학에서 초기 교과 과정을 이수하면서 우리들은 실제로 신약성서의 원문서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난 훗날에 만들어진 필사본들이다. 대개는 수백 년 후의 것들이었다. 심지어 완벽하게 정확한 필사본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사본들을 만든 필사자들이 실수로 혹은 고의로 본문을 여기저기 변개시켰기 때문이다. 모든 필사자들이 그렇게 했다. 따라서 우리는 '원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의 자팔 원고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자필 원고에 나타났을지도 모를 영감으로 된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필 원고를 베낀 사본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오류투성이의 사본 말이다. 그러므로
(1)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2) 우리가 영감으로 된 성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가장 급박한 당면 과제는 성서의 '원본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무디성서대학의 많은 친구들은 이 과제를 그다지 중요하거나 흥미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필 원고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주장에 만족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필 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 문제는 대충 넘어갈 사안이 절대 아니었다. 하나님이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처음에 기록된 성서 말씀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했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처음의 그 말씀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다면, 필사자들이 실수나 고의로 변개하여 만들어낸 다른 본문을 가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일찍이 신약성서 사본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디성서대학에서, 나는 본문비평이라는 이름의 학문 분야의 기초를 닦았다. 본문비평이라는 말은 원본문이 변개된 사본들을 연구하여 성서의 '원본문'을 재구성하려는 과학적 학문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연구에 몰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먼저, 신약성서에 쓰인 언어인 그리스어를 배워야 했다. 게다가 다른 학자들의 주장이나 견해를 알기 위해 독어와 불어 같은 유럽의 현대 언어들을 당연히 배워야 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그야말로 까마득했다. 무디 성서대학에서의 학위 3년을 나는 무사히 잘 마쳤으며, 기독교인 학자가 되는 일에 대해 이전의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햇다. 그 당시 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학문적으로 탁월한 학자들이 아주 많지만 세속적인 학문 분야에 탁월한 학자들 가운데는 복음주의자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나의 헌신을 유지하며 세속적인 환경에서 가르칠 수 있는 학위를 얻음으로써, 세속적인 세계에서 복음주의적인 '목소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학사 학위를 마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최고의 복음주의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나는 시카고근교에 있는 휘튼대학을 선택했다. 무디성서대학에 다니면서, 휘튼대학에서는 진정한 기독교인을 찾기 어렵다는 경고를 이미 수없이 들었다. 이 말은 무디성서대학이 얼마나 근본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모교이기도 한 휘튼대학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대학인데도 그런 평가를 들었다. 처음에는 나 역시 내 신앙의 바탕에서 생각해볼 때, 휘튼대학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대학인데도 그런 평가를 들었다. 이곳 학생들은 성서의 축자영감설보다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주제를 논할 때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논했다.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그 학생들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까? 나는 휘튼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또한 그리스어를 배우는 일에도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휘튼대학에서의 첫 학기에 나는 그리스어 선생인 제럴드 호돈 박사를 만났다. 그는 학자로서나 교사로서, 그리고 결국은 나의 친구로서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휘튼대학의 대다수의 교수들처럼, 호돈 박사는 헌신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그가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품는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그가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엇다.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더 깊은 지식과 인생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견해를 수정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리스어를 배우는 일은 나에게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어를 전공으로 하게 되었지만, 하여간 그 때 나는 그리스어 기초 문법을 꽤 잘 했고, 언제나 더 많이 배우려고 열심을 냈다. 그런데 한 단계 올라가 고급 문법을 배울 즈음, 그리스어를 배우는 일이 나에게 또 나의 성서관에 조금 문제를 일으켰다. 이내 나는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본문의 온전한 의미와 뉘앙스는 그것을 원어인 그리스어로 읽고 연구할 때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에 히브리어를 배워 구약성서를 공부할 때에도 이 사실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어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나는 성서의 축자영감설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만일 성서를 그리스어(그리고 히브리어)로 연구할 때에만 그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고전어를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이런저런 것들을 알기를 바라며 성서를 주셨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 수 는 없지 않겠는가? 아울러 그렇다면 축자영감의 교리는, 수준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고전어를 배워 성서를 원문으로 읽으면서 연구할 여유를 가진 학문적인 엘리트들에게만 해당되는 교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기만의 모국어로 다소 어색하게 번역해 놓은 것 말고는 성서 말씀을 전혀 읽을 수 없다면 그 번역된 말씀은 과연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잇는 것일까? 하나님의 말씀의 창구가 되는 사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 속에 품었던 의문은 한층 더 복잡해져만 갔다. 그리스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신약성서를 보존하고 있는 사본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신약성서 본문비평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다. 신약성서 본문비평학이란 우리가 신약성서의 원본문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학적인 학문분야다. 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사실 하나님이 영감을 불어넣어 오류가 전혀 없는 그 말씀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성서는 오류가 하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필사자들이 베낀 말씀이 아닌가? 부분적으로는 정확하게 베꼈을 것이고, 부분적으로는(오히려 더 많이!) 부정확하게 베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자필 원고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원본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류투성이의 사본들일뿐이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사본들은 시간적으로 원본문보다 수 세기나 후대의 것들이고,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의혹 때문에 나는 참으로 괴로웠다. 그뿐만 아니라 성서가 참으로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점점 더 깊이 파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만에 휘튼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나서, 나는 호돈 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신약성서 본문비평을 더 깊이 공부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는 세계 제일의 전문가이자 학자인 프린스턴신학대학의 교수 부르스 메츠거에게 갔다. 복음주의자들인 친구들은 또 다시 내가 프린스턴신학대학에 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거기서 내가 '참된' 기독교인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진리'를 배운다는 것은 곧 거듭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진리에 대한 탐구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던지 상관없이 나는 그 길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내가 배운 진리가, 비록 나의 복음주의적인 배경이 규정하는 바와 다르다고 해도 그것은 진리임을 믿기 때문이었다. 프린스턴신학대학에 도착하자마자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주석 수업들은 학문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도전이 되는 강의들이었다. 학문적인 도전은 충분히 반가운 일이었지만, 내가 부딪힌 개인적인 도전은 감정적으로 견디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앞에서 말했지만, 나는 이미 취튼대학에서 '무오한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서'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몇가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프린스턴신학대학에서 보다 더 깊이 성서를 연구하다 보니, 내 믿음은 심각한 공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바꾸어 놓으려는 온갖 유혹에 저항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복음주의 학교 출신으로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믿음을 지킨다'는 말은 우스운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기독교 신학 과정을 밟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여간 내 연구는 내 믿음을 따라 잡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두번째 학기에 찾아왔다. 매우 존경받는 경건한 학자였던 컬린 스토리 교수와 함께하는 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그것은 당시에, 그리고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복음서인 마가복음서 주석에 관한 수업이었다. 수업 시간에 우리는 마가복음서를 그리스어로 완벽하게 읽어내야 했다. 나는 학기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 이미 마가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어 단어들을 모두 암기했다. 학기 내내 우리는 마가복음서의 핵심 구절들의 해석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적는 주석 노트를 정리해야 했다. 또한 본문 해석상의 문제점들을 노론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기말에는 한 구절을 선택해 주석하는 학기말 논문을 써야 했다. 나는 마가복음 2장에서 한 구절을 선택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면서 낟알을 따먹은 일로 예수가 바리새인들과 논쟁하는 단락이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다윗 왕이 굶주렸을 때 부하들과 함께 행했던 일, 즉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그들이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제단 빵을 먹었던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준다. 이 구절의 잘 알려진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예수가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서의 말씀(사무엘하21:1-6)을 보면, 다윗이 이 일을 행한 때의 대제사장은 아비아달이 아니라 사실은 아비아달의 아버지인 아비멜렉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단락은 성서가 문자적으로 무오하지 않으며, 실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들 가운데 하나다. 스토리 교수에게 제출한 학기말 논문에서 나는, 비록 마가가 이 사건이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일어났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 아비아달이 대제사장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아비아달이 주인공 중 하나인 성서 본문 속에서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는 취지로 매우 길고 복잡한 주장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토리 교수가 내 주장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굳게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는 틀림없이 나와 마찬가지로 성서에 오류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훌륭한 기독교인 학자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리 교수는 내 논문 말미에 간단한 한 줄 평을 써놓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한 마디는 나를 정통으로 꿰뚫고 지나갔다. 그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마가가 그냥 실수한 것이겠지" 이 학기말 논문에 기울인 그 많은 수고를 곰곰이 되새기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본문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상력을 펴고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는 동시에 주석 작업을 철저히 했어야 했다는 것을. 또한 내가 제시한 해결책은 사실 견강부회였다는 사실도 함께 인정했다. 나는 마침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음... 그래. 아마 마가가 실수를 한 게 맞을 거야." 일단 그렇게 인정을 하자, 물을 막아두었던 둑은 한꺼번에 터져 버리고 말았다. 마가복음 2장에 작고 하찮은 실수가 있을 수 있다면, 다른 단락에도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마가복음 4장에서 예수가, 겨자씨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두고(마가복음4:31), 이 세상에서 겨자씨가 가장 작지 않다는 것을 내가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굳이 겨자씨가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이유에 대해 터무니없는 설명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실수들'은 다음과 같은 더 큰 문제점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도 있다. 마가는 예수가 유월절 식사를 한 후에 십자가에 달렸다고 말하고 (막14:12, 15:25), 요한은 유월절 식사 전에 예수가 숨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요19:14). 이것은 사실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누가는 예수의 탄생 기사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갔다가 겨우 한 달 뒤에 나사렛으로 돌아와 정결예식을 행했다고 말한 반면(눅2:39), 마태는 누가와 달리 그들이 이집트로 피신했다고 말한다(마2:19-22). 이것도 중요한 차이점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바울은 자기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회심을 체험한 후에 자기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고 말한 반면(갈1:16-17),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간 일은 바울이 다마스커스를 떠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이었다(행9:26). 이것 역시 중요한 차이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리스어 신약성서 사본들을 더 면밀히 연구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점들과 맥을 같이 했다. 원본문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가 원본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원본문을 재구성할 수 없다면, 원본문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게다가 교회사의 전 기간에 걸쳐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원본문을 못 접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성서의 축자영감설은 해결할 수 없는 끊임없는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잇는 대다수의 사본들은 수 세기 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어느 한 사본도 다른 사본과 일치하는 사본이 없을 정도다. 그것도 한두 군데 다른 것이 아니라 수천 군데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본문을 이문(異文)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살펴보게 되겠지만, 사본들은 서로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신약성서 필사 전승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문이 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신약성서에 있는 낱말의 수보다 이문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이문들의 바다에서 어떤 본문이 진짜이겠는가? 이 모든 이문들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본문을 재구성할 수 있단 말이가? 만일 하나님이 성서의 문자 하나하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지금 우리가 그 성서의 문자 하나하나를 잃어버렸다면, 이 주장의 논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우리가 원본문을 정확하게 재구성했다는 확신을 전혀 가질 수 없는 구절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리가 그 문자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 말씀을 보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존하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면, 먼저 문자에 영감을 불어넣는 기적을 수행했다고 생각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해, 나는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연구하고 신약성서 사본들을 탐구하다가, 성서에 대한 나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게는 지각 변동과 같은 일이었다. 이전까지, 그러니까 학창 시적 거듭남의 체험에서 출발해, 근본주의적인 무디성서대학 시절을 거쳐, 복음주의적인 휘튼대학 시절을 지나기까지, 내 믿음은 특별한 성서관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성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절대적으로 무오하다는 성서관이었다. 나는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성서를 그런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 성서는 나에게 매우 인간적인 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 필사자들이 성서본문들을 베껴 쓰고 변개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성서 본문을 '기록한' 이들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책인 셈이다. 성서는 서로 다른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다. 성서의 저자들 중 다수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말한다고 느꼈지만,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자신들의 시각과 자신들의 믿음과 자신들의 견해와 자신들의 필요와 자신들의 소망과 자신들의 이해와 자신들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각과 믿음과 견해와 필요와 소망과 이해와 신학은 그들이 말하는 모든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런 모든 면에서, 그들은 서로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복음서와 누가복음서의 보도는 똑같을 수가 없다. 마가복음서 저자의 의도와 누가복음서 저자의 의도가 달랐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서와 마태복음서는 같을 수 없다. 바울서신의 보도는 사도행전의 보도와 다르다. 야고보서 역시 바울서신과 다르다. 신약성서의 각 문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모두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성서를 읽을 때, 각 저자들이 쓴 것을 그대로 읽으면 된다. 어떤 저자가 보도하는 내용이 다른 저자가 보도하는 내용과 같다거나 비슷하다거나 일치해야 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서는 매우 인간적인 책이다.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전망이었으며, 내가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이엇을 때 가지고 있었던 시각은 분명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의 견해도 아니다. 나의 변화된 시각이 성서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 예를 들어보자. 무디성서대학에 다닐 때, 학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들 가운데 하나는 헬 린지(Hal Lindsay)가 쓴, 미래에 대한 묵시적 청사진인 <대유성 지구의 종말 the Late Great Planet Earth>이었다. 그의 책은 1970년대 영어권 비소설 분야에서 성서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린지는 성서가 그 글자까지도 한치의 오류가 없다고 믿었다. 신약성서를 읽으면, 하나님이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우리가 무엇을 믿기를 원하는지 알 뿐만 아니라, 미래에 하나님이 하려고 계획 중인 일이 무엇이며, 그 일을 어떻게 행할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대재앙이라는 종말의 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무오한 성경 말씀을 읽으면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언제'라는 점에 매료되었다. 린지는 예수의 무화과나무 비유가 미래의 아마겟돈 전쟁을 예상할 수 있는 암시라고 말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언제 '끝'이 올지 알고 싶어 하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24:32-34). 이 비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린지는 이것이 하나님이 직접 말한 무오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여,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흔히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적어놓았다.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겨울동안 잠시 동면한 후에 소생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언제 소생했는가? 1948년 이스라엘이 다시 한 번 주권국이 되었을 때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바로 그 세대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수가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에서는 보통 몇 년을 한 세대로 보는가? 40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가르침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의 국가 재건으로부터 40년 후인 1988년 이전 어느 때에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이다."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대단히 강력하고 감동적이었다.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채 1988년이 이미 지나간 것을 감안하면 지금은 이 메시지가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도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읽어도 그 뜻이 잘 통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이들은 역사의 종말이 임박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예언과 관련해 성서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다. 티모시 라헤이와 필립 젠킨스의 <레프트 비하인드> 시리즈에 대해 사람들이 보여준 열광을 한번 생각해 보라. 이 시리즈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해 우리의 미래를 묵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우리 때에만 6천만 부 이상 팔렸다. 성서를 우리의 신앙과 삶과 미래에 대한 무오한 청사진으로 받들어 읽다가, 이제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쓰인 인간적인 책으로 보는 것은 아주 급격한 변화다. 다양한 인간적인 관점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이 가운데 어떤 관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무오한 지침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마침내 도달한 사고의 전환이며, 지금 나는 여기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종종 이렇게 쓰인 범퍼 스티커를 본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믿는다. 그러면 결론은 분명하다." 나는 그런 말에 이렇게 응답한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전해주는 책이라고 당신이 옆에 끼고 다니는 책이 만일 인간의 말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낙태 문제와 여성 인권 문제와 동성애 문제와 종교적 패권주의 문제와 서구식 민주주의 문제 등 현대 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성서를 거짓된 우상으로 삼지 않고, 또한 전능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삼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우리 삶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무오한 지침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명백한 이유는 많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지적해온 것처럼, 학자이건 일반 독자이건, 우리는 성서의 본래의 문자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와 같은 인식으로 나는 신약성서 사본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본문비평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사본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 본문비평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성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로우면서도 가치 있는 학문이라고 확신한다. 문자주의자든, 문자주의로 회귀한 사람이든, 평생 한 번도 문자주의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이든, 심지어는 기독교 신앙 없이 그저 성서를 역사적으로 문화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외부인이든, 이 모든 사람들에게 본문비평은 참으로 중요한 학문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거의 모든 성서 독자들이 본문비평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또 성서에 관심이 잇는 사람들, 심지어는 성서학에 관심이 잇는 사람들도 본문비평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성서무오성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본문비평이 3백년 이상 지속되어온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쓰인 본문비평 서적이 거의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본문비평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심층적인 본문 연구에 필수적인 그리스어와 기타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 본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그 문제들이 어떤 것이며 학자들이 그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 이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이 그런 목적으로 쓴 최초의 책인 것 같다. 본문비평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필사자들이 성서를 어떻게 변개시켰으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다. 이 주제에 대해 나는 30년 동안 고민했고, 이 책은 바로 그 30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쓰였다. 성서에 대한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이후, 내가 지금 가지고 잇는 시각에 따라 책을 썼다. 신약성서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어쨌던 어떤 경우에는 저자들이 처음 기록했던 문장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 어떤 과정에서 다양한 이문이 생기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다소 철저한 학문적인 분석 방법을 사용해 어떻게 원본문을 재구성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책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책이다. 나의 긴 신앙 여정의 최종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도 그들의 여정의 일부가 될 수도 있으리라 기대한다.
[출처] 반기독교 안티예수 - baroseum.net/bbs/board.php?bo_table=tb411&wr_id=60
p.145
흄이 말한 기적검증법의 핵심이 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증언이 입증하려는 사실보다 그것의 부정이 더 기적적이지 않다면, 어떤 증언도 기적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못하다."
P.151
아무튼 예수가 정말로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면, 요셉의 족보는 그와 아무 상관이 없으므로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다는 구약성서의 예언을 예수에게 맞추기 위해 족보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p.155
이미 충분히 유독한 그런 논증에 별 차이를 가져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변증론자들은 거기에 다윈의 이름을 추가하기도 한다. 다윈이 임종 때 참회를 했다는 명백히 잘못된 소문이 나쁜 냄새처럼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p.156
뉴턴은 정말로 자신이 종교인이라고 주장했다. 19세기가 될 때까지(나는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다. 19세기는 이전 세기에 비해 신앙 고백을 하라는 사회적 사법적 압력이 덜 했고, 신앙을 버리면 과학적 지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양쪽 다 예외가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거의 모두가 그러했듯이 뉴턴도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했다.(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 신앙면에서 사회적 압박이 약해졌다. 오히려 신앙을 버리면 더 많은 과학적 지원을 받았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우리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다윈의 연구를 안 이후에도 기독교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마이클 패러데이( Michael Faraday, 1791년 9월 22일~ 1867년 8월 25일)는 전자기학과 전기화학 분야에 큰 기여를 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이다. 패러데이는 어린 시절에 정식적인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매우 훌륭한 과학자로서 남겨져 있다. 물리학에서, 패러데이는 전자기장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확립하는 직류가 흐르는 도체 주위의 자기장에 대한 연구를 했으며, 자성이 광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과 그들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 또한 확립하였다. 그가 발명한 전자기 회전 장치는 전기 모터의 근본적 형태가 되었고, 결국 이를 계기로 전기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화학자로서, 패러데이는 벤젠을 발견했고, 염소(Cl)의 격자무늬 수산화물에 대해 조사했으며 초기 형태의 벤젠 버너, 산화 상태들의 체계, 그리고 양극, 음극, 전극, 이온과 같이 널리 쓰이는 전문 용어들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패러데이는 영국 왕립과학연구소의 초대 풀러 화학 석좌교수 (Fullerian Professor of Chemistry)가 되었고, 평생 동안 그 직위를 유지했다.
패러데이의 겸손함과 검소함은 종교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는 후에 그의 과학적 업적과 관련하여 큰 의미를 갖는다. 그의 가문은 할아버지 시절부터 기독교 근본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패러데이가 속한 샌더매니언 집회는 성서의 교리를 매우 중요히 여겨 신도들로 하여금 엄격하게 따를 것을 요구했다. 샌더매니언 집회의 회원으로서, 그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 와 같이 세속적인 부에 관련한 성서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에 입각 해 패러데이는 자신의 어떤 발명에 대해서도 특허를 얻지 않았으며 높은 봉급을 원하지도 않았고 자선 사업에 기부를 많이 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명예와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권력을 거부하며 소박한 삶을 살기 원했다. 그는 돈이나 다른 세속적인 명예가 아닌 순수한 학문을 위한 연구를 했다. 특히 1831년 전기와 자기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하여 단서를 찾았을 때, 그는 재정상태를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해왔던 모든 부수적 활동들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의 과학은 전체적으로 그의 종교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1844년 그가 남긴 “내 종교에는 ‘철학’이 없다” 라는 말에는 과학적 지식이 종교를 해명하거나 인간을 신에 게 인도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p.159
종교인이면서 진정으로 저명한 현대 과학자를 찾으려는 변증론자들의 노력은 빈 통을 긁어내는 공허한 소리를 내면서 절망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p.160
변증론 [apologetics, 辨證論]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교 진리를 지적으로 변호하는 것.
흔히 신학의 한 부문으로 간주한다. 개신교에서는 변증을 특정 그리스도교 분파의 신념을 방어하는 논증법과 구별하기도 하지만, 로마 가톨릭은 교리 일반의 변호라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며 변증을 기초 신학과 동일시한다.
전통적으로 변증론은 그리스도교를 직접 변론하는 데는 적극적이나, 타종교를 비판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변증론의 기능은 신자의 신앙을 강건하게 하여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하고, 불신자의 회심(回心)을 가로막는 지적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다.
변증은 비(非)그리스도교인의 반론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할 경우 교조주의로 흐를 염려가 있고, 회의론자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양보할 경우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방어하는 힘이 약해질 염려가 있으므로 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힘들게 해왔다.〈신약성서〉에서 변증론의 취지는 유대교와 유대교의 예언이 그리스도교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변론하려는 데 있었다. 초기 교회에서 유스티누스나 테르톨리아누스같은 변증론자들은 이방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도덕적 우월성을 변호하고, 〈구약성서〉의 예언이 그리스도교에서 성취되었음을 지적했다. 2~3세기에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적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성령이 초자연적으로 증거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4세기말경 플라톤주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멸망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보고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제시했다. 중세 후기의 변증론자들은 유대교나 이슬람교 같은 경쟁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주의 제1 원인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근거하여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변론했고, 그의 이론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시대에 변증은 대체로 '논증법'으로 바뀌었다. 많은 분파들은 '논증법'을 이용하여 그리스도교 일반보다는 자신들의 특정한 신념을 옹호하고자 했다.
18세기 영국의 주교 조지프 버틀러는 초자연적인 그리스도교도 과학적인 이론 못지않게 합리성과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일어나기 시작한 이신론(理神論)의 도전에 맞섰다. 그후 영국의 윌리엄 페일리는 시계의 존재가 시계를 만든 사람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처럼, 이 우주에도 틀림없이 설계자가 있다고 주장했다.19세기에 들어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이 공격을 받게 되자, 변증론자들은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적 특성을 부인한다면 예수의 부활과 그리스도교의 급속한 확산은 설명되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또한 역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통 변증론에 대한 공격이 많아지자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종교 철학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를 도덕적으로 논증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진화론,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론,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론이 쏟아지자 변증론자들은 이 반론이 근거하고 있는 기초들을 논박하거나, 이러한 반론의 일부 측면을 그리스도교에 유리한 새로운 주장들로 전환함으로써 대응했다.
그러나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인 스위스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그리스도교는 오직 신앙에만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변증론 체계의 전반에 대해 회의를 나타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지적 계승자들이 구축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변증론 체계는 20세기 들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변증론의 몇 가지 기능은 '근본주의 신학'에 흡수되기도 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변증론은 주로 신자들의 공동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수많은 견해와 가치체계에 의해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이 계속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출처: 브리태니커
1998년 E.J. 라슨과 L. 위덤이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실은 글에는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될 정도로 저명한 미국 과학자들 중에 인격신을 믿는 사람이 약7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나와있다.
손꼽히는 창조론 웹사이트인 “창세기에 대한 답변들 "https://answersingenesis.org/"이 라슨과 위덤의 연구결과를 종교에 오류가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니라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진화가 종교와 양립할 수 있다는 종교 변증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 활용한다는 점이 좀 재미있다.
창조론을 옹호하는 유명한 웹사이트 "창세기에 대한 답변들"을 보면 라슨가 위덤의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종교변증론자의 태도(창조론과 진화론의 공생)를 공격하는데 그 연구결과를 이용하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앨버츠는 내가 ‘네빌 체임벌린 진화학파 (2장참조)’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NOMA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창세기에 대한 답변들은 전혀 다른의도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p.163
한 가지 주제에 관해 발표된 연구 논문들을 모두 조사하여 이런 결론을 내린 논문의 수가 얼마나 되고 저런 결론을 내린 논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메타 분석이라는 기법이 있다.
종교와 IQ라는 주제로 메타 분석을 한 연구는 내가 알기로는 하나밖에 없다. 2002년 <멘사 매거진>에 폴 벨이 발표한 것이다.
벨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1927년 이래로 신앙과 지능 또는 교육 수준의 관계를 다룬 연구 논문 43편 중 4편을 제외한 모든 논문이 그들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지능이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종교적이거나 어떤 ‘신앙’을 지닐 가능성이 적다.”
메타 분석은 그것에 기여한 개별 연구들보다 덜 구체적이기 마련이다.
이쪽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마찬가지로 다른 국립 아카데미들의 엘리트 회원들, 노벨상, 크로퍼드상, 필드상, 교토상, 코스모스상 등 다른 주요 상의 수상자들을 대상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개정판에 그런 자료들이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기존 연구들로부터 이끌어낸 합당한 결론은 종교 변증론자들이 존경받는 역할 모델을 이야기할 때 적어도 과학자에 관해서는 습관적으로 하는 말을 자제하고 잠자코 있는 편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다.
어쨋거나 종교 변증론자들이 존경받는 역할모델을 이야기할 때 적어도 과학자에 관해서 습관적으로 언급하는 것 (독실한 과학자 논증 : 뉴튼은 종교인이었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자신이 뉴튼, 갈릴레오, 케플러 등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신하는가? 그런 위인들이 신을 선호한다면 당신도 그래야하는 것 아닌가 같은 식의...)은 자제하고 잠자코 있는 편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다.
p.164
파스칼의 내기
p.165
더글라스 애덤스(Douglas Noel Adams)는 《더크 젠틀리의 탐정사무소(Dirk Gently's Holistic Detective Agency'》에서 신앙을 결정의 대상으로 보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재치 있게 조롱했다. 그 책에는 당신을 위해 믿는 일을 대신하는" 노동력 절감장치인 수도사 로봇이 나온다. 그 사치스러운 모델은 "솔트레이크 시에서 믿지 않을 것도 믿을 수있는 형태라고 선전된다.
그 사치스러운 로봇은 "솔트레이크 시에서 믿지 않을 것도 믿을 수있는 모델"로 전시된다.
(※ 솔트레이크 시티 : 몰몬교의 본산지이자 기독교 각종 교파의 총집합소)
그런데 왜 우리는 신을 기쁘게 하고 싶을 때에 해야 하는 일들 중의 하나가 그를 믿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믿는다는 것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 그것은 신이 친절이나 관용이나 겸손함에 대해 보상하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아니면 성실함에 대해? 신이 진리를 정직하게 추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는 과학자라면 어쩔 것인가? 사실 우주의 설계자라면 과학자여야 하지 않겠는가?
p.166
바알(Baal)은 주(主)라는 뜻이며 농업공동체였던 고대 가나안인들이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하던 풍요와 폭풍우(暴風雨)의 남성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최고신인 엘(El), 어머니는 바다의 신 아세라였다. 하지만 가나안의 특징때문에 엘보다는 바알이 숭배되었다.
구약성서에서는 바알 신앙과 야훼 신앙이 경쟁관계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들(엘리야 예언자와 바알의 예언자들간의 갈멜 산에서의 내기)이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야훼 신앙은 목축국가에서, 바알 신앙은 농경국가에서 숭배되었다는 점에서 농경문화권과 목축문화권의 대결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후 야훼 신앙과 대립한다는 이유로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마왕이나 악마, 지옥의 군주 등 사악하고 타락한 존재로 묘사되어 왔다.사실 '주인'이라는 이름 뜻 답게, 수 많은 부족들마다 각자 '바알'로서 섬기는 신이 달랐다. 유대인들의 바알은 야훼라고 할 수도 있다. 기독교 구약성경속에서의 끊임등장하는 바알은 사실 다른 신으로써보다 누가 진정한 신이냐의 관계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후에 결론이 내려진후에 바알이 유대교에 의해 악마화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전까지는 말하자면 신을 의미하는 통칭으로 쓰였다고 할수 있다. 바알이란 이름이 왕을 의미하기에, 악마(원래는 오리엔트의 신)의 이름중 발, 바알, 벨이 들어가는 악마가 많다. 벨제브브의 벨도 바알이며(바이블에 괜히 바알세불이라고 표현된게 아니다) '벨'페골이란 악마도 있으며, 심지어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발도 왕이라는 뜻이다
p. 167
베이스 논증
그것은 몇가지 설명의 끈들을 하나로 묶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그 목적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2장에서 말한 것처럼 적어도 원칙적으로 조사 가능한 과학적 가설로서 신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또 개연성에 수를 부여하려는 언윈의 돈키호테같은 노력이 아주 유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수학공식으로 증명
하나님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과학자가 있어 화제다. 9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현재 미국 오하이오주 재난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수학자 스티븐 언윈박사는 "약 250년전 영국인 수학자 토머스 베이스가 만든 확률이론을 이용, 계산해보니 하나님이 존재할 가능성이 67%나 됐다"고 주장했다. 맨체스터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언윈박사는 "이 이론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가정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반된 가정을 각각 50%씩 두고 사회현상을 관찰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윈은 이런 고전이론에서의 가정인 하나님의 존재유무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와 악마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바꿔 계산해 봤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가정으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우연의 일치나 좋은 일을 대입했고 악마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가정에는 지진, 홍수같은 인간의 힘으로는 일으킬 수 없는 대재난을 대입, 빈도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의 기초가 되는 긍정적인 사회현상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언윈은 이번 연구를 시작한 동기로 "개인적으로 과학과 신앙을 연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비록 청소년시절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참석한 예배시간에는 상습적으로 졸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존재할 가능성은 내 계산에서 도출된 67%가 아닌 95%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언윈은 "이번 연구결과는 단지 수학적인 계산결과일 뿐"이라며 "이 문제로 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긴 싫다"고 덧붙였다.
- 출처: 가디언
하나님의 존재확률
지난 3월 영국 Guardian 지에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습니다. Stephen Unwin 이라는 과학자가 하나님의 존재 가능성을 67%라고 산출해 내었습니다. 그는 200년 된 방식을 사용해서 전능자의 존재 가능성을 계산했습니다. Bayes의 이론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보통 어떤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대조해서 원자력 감퇴 가능성 같은 것을 계산해 내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맨체스터 대학 출신으로 현재 오하이오에서 위험 계산 전문인으로 일하는 그는 하나님의 존재 확률을 50:50으로 보고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고등한 존재의 개념에 편드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증거 요인들을 모읍니다. 예를 들어 선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가능성을 편드는 쪽이고, 자연 속의 악의 존재 예를 들어 지진이나 암은 하나님의 존재를 반대하는 쪽입니다. 이런 것들을 대조하는 방식입니다. 기적 같은 색다른 것들도 고려에 넣습니다. 그의 책에는 계산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직접 계산해볼 수 있는 셈표도 있다고 합니다. 책은 '궁극적인 진리를 증명하는 단순한 계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그 책이 나왔을 것입니다.
언윈 박사는 미국에 와서 종교와 과학이 경쟁하는 것처럼 보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이고, 그의 계획은 신앙과 교육의 화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는 신학적이라기보다는 단순히 통계학의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그 자신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95% 정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Graham Sharp라는 분은 그런 확률 계산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당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최종 확정짓느냐이다. 네스 호의 괴물의 경우, 우리는 국립역사박물관의 확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하나님에 관해서는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교회는 물론 하나님의 존재를 확정지어주겠지만..."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는 내기할 필요가 없다. 그 확률은 1000분의 1이니까. 그것을 위해서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확인만 있으면 된다." 말하자면 하나님 존재 확률은 아무리 계산을 잘 했다 해도 최종 확인 과정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입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존재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수치를 내어놓든지 나의 존재 확률은 100%입니다. 그것은 확률이라는 수치를 초월합니다. 나의 창조주 하나님은 나 이상으로 확실히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호의적인 혹은 비호의적인 추론과 상관없이 믿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확률의 지혜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입니다. 멀리서는 엄청난 재해가 가까이에서는 무서운 질병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언윈의 방식대로라면 하나님의 존재 확률을 깎아내리는 쪽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우리의 믿음이 빛을 발휘할 때입니다.
- 출처 : 브뤼셀 한인교회 홈페이지
스티븐 언윈의 「신의 개연성 - 부제 : 궁극적인 진리를 증명하는 단순한 계산」
(훗날, 이 확신에 찬 부제는 출판업계의 짓이라는 증거가 드러난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확신은 발견되지 않음)에서, 신의 존재 문제를 연구사례로 간주한다. 그는 신의 존재가능성을 50%로 제멋대로, 가정해버린다. 나머지는 50%는 부존가능성이다. 이 50%의 추정값은 주관적이라는 점은 물론이고 근거 없으며, 쓰레기(Gabage)이다. 소위 BASE정리는 이제 6가지 가중치에 의해 최종평결에 이른다.
6가지 가중치는 다음과 같다
① 우리는 善에 대한 감각이 있다.
② 사람은 惡을 행한다.(스탈린, 히틀러)
③ 자연은 惡을 행한다. (지진, 해일, 태풍)...
등등..
무튼, 이런 가중치에 의해 최종평결에 이르고 이에 따르면 신의 존재확률은 67%이다. 여기에 언윈의 신앙을 긴급수혈하여…95%
이는 무가치한 짓이며 GIGO (Gabage In Gabage Out)일 뿐이다.
p.170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가지 증명이나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같은 것은 스티븐 언윈의 베이스논증에서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그것들을 논의하기는 하지만, 공허하다며 갖다 버린다. 이 점 만큼은 그가 뛰어난 통계학자라고 생각한다. (설계논증 폐기처분의 이유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증은 약해빠져 보인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가중치의 값이 다르기 때문이다.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할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신에게 유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그것이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6장과 7장에서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감각을 지닌다는 사실이 초자연적인 신의 존재와 뚜렷한 연관성을 보이는 사례가 전혀 없음을 제시할 것이다. 베토벤의 사중주를 감상하는 능력을 예로 들면, 우리의 선에 대한 감각(비록 반드시 그것을 따를 동기는 없다고 할지라도) 신이 있거나 없거나 그대로일 것이다.
언윈의 첫번째 가중치에 해당하는 (우리는 선에 대한 감각이 있다.) 명제가 신의 존재에 유리한 작용을 한다는 생각은 왜 하는 것일까? 6.7장에서 부연설명이 있겠지만 베토벤의 4중주와 그 명제가 아무 연관성이 없음과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여부와도 아무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정론은 여전히 신학자들을 불면증에 시달리게 한다.
신정론(神正論,
신의론(神義論), 변신론(辯神論), 호신론(護神論),
(독일어: Theodizee, 불어: théodicée, 영어: theodicy, 고대 그리스어: θεός theós‚ 신‘과 δίκη díke ‚정의‘)
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이론“을 가리킨다. 이 이론은 신이 전능하면서도 선하다고 한다면 어째서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에게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능력("전능")과 의지("선함")가 있다고 해야할텐데 그럼에도 왜 신이 고통을 허용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신정론이라는 개념은 초기 계몽주의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의 저서 '신정론 Theodizee'(원제: Essais de théodicée (1710))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혹은 종교철학적 질문으로서의 고통에 대한 물음은 이미 고대 문화, 예를 들면 고대 중국, 인도, 수메르, 바빌로니아, 이집트와 이스라엘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명한 예로는 구약성격에 있는 욥의 이야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 철학에서도 신이 (만약 존재한다면) 실제로 악을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고, 이 주장은 일부 더 나아가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신의 정당화에 대한 물음은 현대에 특히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사건 이후(소위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 다시금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유치할 정도로 쉽다. 불가피하지만 역겨운 신(구약성서)이라고 생각하거나, 별도의 악한 신을 창안하여 끊임없이 선한 신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신이 더 원대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에 대한 대가라고 합리화시키는 것, 등…
따라서, 언윈의 논증은 귀무가설(그의 경우 50%)에서 어느쪽으로도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 영 가설(0 假說, null hypothesis, H0) 또는 귀무가설(歸無假說)은 통계학에서 처음부터 버릴 것을 예상하는 가설이다. 차이가 없거나 의미있는 차이가 없는 경우의 가설이며 이것이 맞거나 맞지 않다는 통계학적 증거를 통해 증명하려는 가설이다. 예를 들어 범죄 사건에서 용의자가 있을 때 형사는 이 용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추정인 대립가설(Alternative hypothesis)을 세우게 된다. 이때 귀무가설은 용의자는 무죄라는 가설이다. 통계적인 방법으로 가설검정을 시도할 때 쓰인다. 로널드 피셔(Ronald A. Fisher)가 1966년에 만든 개념이다.
훨씬 더 강력한 논증이 있다.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지 않는 논증인데 바로 불가능 논증이다. 그것은 사실상 우리를 50퍼센트의 불가지론으로부터 훨씬 멀리, 유신론자들이 보기에는 유신론의 극단까지, 내가 보기에는 무신론자의 극단까지 이동시킨다. 나는 이미 그것을 몇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 논증 자체는 "누가 신을 만들었나"라는 익숙한 질문을 자극한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그 질문을 발견한다. 설계자 신은 조직화한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이용할 수 없다. 무언가를 설계할 수 있는 신은 그 자체가 같은 종류의 설명을 요구할 만큼 복잡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무한회귀를 나타내며, 그는 우리가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수 없다. 다음 장에서 말할 이 논증은 신의 존재가 비록 학술적으로는 반증 불가능할 지라도, 사실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강력한 논증이 있다. 이 논증은 객관적이기까지 하다. 바로 불가능 논증이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답은 극렬하게 갈릴 수 있다. 무신론자는 극단적인 무신론으로 이동하지만, 정반대로 유신론자는 극단적으로 유신론의 입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논증은 다음과 같다.(이미 몇차례 언급했다.) 이 논증은 설계논증과 무한회귀의 합작품이다. 이 논증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함으로서 비롯된다. "누가 신을 만들었는가?" 설계자 신은 스스로의 조직화된 복잡성을 설명하는데 이용할 수 없다. 결국 신은 무한회귀로 돌아서며, 우리는 논리적으로도 그를 무한회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다음 장에서 설명할 이 논증은 논리학적으로 신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사실상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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