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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는 도킨스 (GOD DELUSION ) 주석 EP 4

by 다리디리다라두 2023. 2. 28.

4.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p.174 

보잉 747과 고물 야적장


하지만 거기에서 우연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창조론자가 남용하는 비개연성 논증은 늘 똑 같은 형식을 취하며, 그것은 창조론자가 정략적으로 ‘지적 설계’라는 세련된 옷을 입고 위장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자연선택 이론에 있어서 우연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지적설계'라는 화려한 옷을 입은 창조론자가 비개연성 논증을 무기로 떠들어댄다 한들, 항상 같은 형식일 뿐이며, 차이는 없다.


일부 관찰될 현상들은 통계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다는 말이 제대로 들어맞는다.

 

종종 정보이론의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다윈주의자는 생체 물질에 든 모든 정보의 원천을 설명하라는 도전을 받는다.

그것은 비개연성 즉, ‘놀람 가치’의 척도라는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정보 내용을 의미한다.

종종 "다윈주의자는 생체 물질에 든 모든 정보의 원천을 설명하라"는 도전을 받기도 한다.
그것은 비개연성 즉, ‘놀람 가치’의 척도라는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정보 내용을 의미한다.

* 정보 이론(情報理論)은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매체에 저장하거나 채널을 통해 통신하기 위해 데이터를 정량화하는 응용 수학의 한 분야이다. 데이터의 단위인 정보 엔트로피는 보통 비트(bit)수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하루 단위의 날씨 정보가 3비트의 엔트로피를 가진다면, 하루의 날씨를  3비트로 기술할 수 있다.


당신이 설계자를 불러내어 설명하고자 하는 실체가 통계적으로 그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그 설계자 자신은 그것보다 더 있을 법하지 않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신은 궁극적인 보잉 747이다.

당신이 설계자의 지원을 받으며 설명하려고 애쓰는 동시에 다윈주의자에게 통계학의 지원을 받아 설명해 볼 것을 다그치는 그 생체물질의 실체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한들, 그 설계자 자신은 그것보다 더 비개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신의 존재야말로 진정한 보잉 747이다.

 

비개연성 논증은 복잡한 것들이 우연을 통해 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연을 통해 출현하다’가 ‘계획적인 설계 없이 출현하다’와 동의어라고 규정한다. 그러니 그들이 비개연성을 설계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비개연성을  근거로 유신론자는 복잡한 것들의 필연성을 말한다 하지만 우연을 통해 출현한 것과 계획적인 설계 없이 출현한 것은 뭐가 다른가? 그런 논리라면, 비개연성이 설계의 증거라는 주장도 전혀 무리가 없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생물학적 비개연성에 비추어서 그것이 대단히 잘못된 생각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록 다윈주의가 무생물의 세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생물학 본연의 영역 너머에 있는 분야들에서도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다윈주의를 깊이 이해하면 설계가 우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손쉬운 가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하며, 서서히 복잡성이 증가해가는 계단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오히려 생물학적 비개연성이 대단히 잘못된 생각임을 보여준다. 또한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다윈주의를 깊이 이해할 수록 이 세계가 설계로 이루어졌다는 라는 손쉬운 가정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세계의 형성의 열쇠인 서서히 복잡성이 증가해가는 계단을 찾아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다윈 이전에도 흄 같은 철학자들은 생명의 비개연성이 반드시 생명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저 대안을 떠올릴 수 없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음을 간파했다.

 

요약
만물은 신에 의해 설계되었다. 만물의 복잡성은 신의 설계에 의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신은 설계없이 출현했다. 신은 전지전능하니까… 그렇다면 그 전지전능한 신은 어떻게 설계된 것인가?


p.178

각성제로서의 자연선택

 

역사’의 ‘his’가 남성 대명사와 어원상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허스토리’는 지극히 터무니 없는 조어다. 그것은 1999년 워싱턴의 한 관료를 파면시킨 ‘인색하게’라는 단어만큼이나 어원상으로 어처구니 없는 단어다. 하지만 niggardly’나 ‘herstory’ 같은 어리석은 사례들도 의식을 각성시키는 데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nig·gard·ly
 미국식 [|nɪgərdli] 영국식 [|nɪgədli] 명사형 niggardliness 유의어/반의어
 형용사 (격식 못마땅함) : 1.(돈・시간 등에) 인색한 2.선물・금액이 보잘 것 없는  예) niggardly aid 하찮은 원조

 

자신의 견해를 고집함으로써 오히려 반격의 기치를 높이는 부정적인 반응을 택한 사람들조차 그러했다.

분리주의적 견해를 고집하여 반대세력의 의지를 고취시키기 위해 부정적인 발언을 택한 사람들조차 그러하다.

 

자연선택은 생명 전체를 설명할 뿐 아니라, 과학이 그 어떤 계획의 인도도 받지 않은 채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여 고도로 조직화된 복잡한 것이 출현하는 과정을 설명할 힘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역할도 한다.

자연선택은 생물 전체를 설명할 뿐 아니라,  그 어떤 설계자의 개입 없이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고도로 조직화된 복잡한 생태계가 출현하는 과정을 과학이 독자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충분히 있음을 각성시켜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이기적 유전자>를 두 번째 읽고 있을 때였던 같은데) 모든 것이 제자리에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단히 단순하면서도 생명의 모든, 한없이 다양하고 난해한 복잡성의 근원이 되는 개념이 있었지요. 그것을 접했을 때 느낀 경외심에 비하면 사람들이 종교적 경험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경외심은 솔직히 시시하게 여겨졌습니다. 나는 언제라도 무지의 경외심보다는 이해의 경외심을 택할 겁니다.  

- 더글라스 애덤스 [의심의 연어]


과학에도 해박한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진화가 우리가 지닌 가장 오래된 개념들 중 하나를 반박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크고 엄청나고 명석한 것이 그보다 못한 것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나는 그것을 적하 창조론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창이 창 제작자를 만드는 광경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편자가 대장장이를 만드는 광경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도기가 도기공을 만드는 광경도 결코 못 볼 것이다.

 

"다윈은 지극히 반직관적인 일을 하는 작동 가능한 과정을 발견함으로써 인류 사상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의식을 일깨우는 힘도 제공했다."

"다윈은 생물의 초자연적 작용 과정을 발견함으로써 생물학적 기여와 더불어 의식을 각성시키는 힘도 제공했다."

 

각각의 과학 분야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운다. 호일의 분야인 천문학은 우리의 허영심을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작은 무대에 맞게 축소시킴으로써 글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도 우리를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우주 폭발로 생긴 ‘티끌’에 불과한 우리에게 어울리는 자리 말이다.지질학은 우리가 개인으로나 종으로나 생존 기간이 짧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존 러스킨의 의식을 일깨웠으며, 1851년 그의 입에서는 잊혀지지 않을 감명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지질학자들이 나를 그냥 놔두면 아무 문제없으련만, 그 끔찍한 지질 망치들! 내게는 성서의 각 절이 끝날 때마다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과학의 각 분야는 각자의 고유 방식으로 우리의 의식을 각성시킨다.  천문학은 우리의 허영심을 우리의 삶의  무대에 걸맞게 복귀시켜, 우리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 놓는다. 빅뱅의 먼지에 불과한 우리에게 안성맞춤의 크기로 말이다. 지질학 역시 우리가 개체로든, 종으로든 생존 기간이 터무니 없이 짧다는 것을 각성시킨다. 동시에 그것은 존 러스킨의 의식도 각성시켰으며, 1851년 그는 잊혀지지 않을 감명적인 외침을 남겼다. “지질학자들이 나를 그냥 놔두면 아무 문제없으련만, 그 끔찍한 지질 망치들! 내게는 성서의 각 절이 끝날 때마다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진화는 우리의 시간관념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을 한다. 놀랍지는 않다. 진화는 지질학적 시간 규모 내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 특히 자연선택은 더 많은 일을 한다. 그것은 생물학 영역 내에서 설계하는 환각을 산산히 부수며, 물리학과 우주론 분야에서도 모든 형태의 설계 가설을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나는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썼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사가가 아니지만 감히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현대 우주론은 사실상 다윈 및 윌리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어느 누구와도 달리, 그들은 초자연적 행위자를 전적으로 배제한 채 우리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다…. 다윈과 월리스는 생명과학뿐 아니라 우주론을 위한 표준을 설정했다.

진화론은 우리의 시간관념에 대해서도 똑같은 각성을 준다. 뿐만 아니라 다윈의 자연선택은 더 많은 일을 한다. 그것은 생물학 영역내에서 설계론이라는 환각을 산산조각내버리며, 물리학과 우주론의 영역분야에서도 설계론을 재검토하라고 가르친다.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의 말은 이러한 각성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사가가 아니지만 감히 견해를 밝히자면, 현대 우주론은 사실상 다윈과 윌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들 이전의 누구도 초자연적 설계자를 우리의 세계에서 전적으로 배제한 적은 없었다. … 다윈과 윌리스는 생명과학뿐 아니라 우주론을 위한 표준을 설정했다.

 

그런 각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원하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책 <과학은 신을 발견했는가? 답은 ‘아니오’다>를 쓴 빅터 스텡거와 내가 아끼는 과학서인 <다시 찾은 창조>를 쓴 피터 앳킨스가 그렇다.

 

각성을 하지 않는 유신론자들이 자연선택을 ‘신이 창조를 성취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놀란다. 그들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가 생명으로 가득한 세계를 달성하는 아주 쉽고 산뜻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앳킨스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가능한 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 생명이 있는 우주를 창조하려는 게으른 신을 가정한 후 이 생각의 흐름을 이어가다 마침내 현명하게도 신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앳킨스의 게으른 신은 18세기 계몽운동에서 나타나는 자연신교의 신 즉, 말 그대로 쉬고 놀고 빈둥대는, 별 쓸모없는 신인, 이른바 데우스 오티오수스보다 더 게으르다. 앳킨스는 차근차근 게으른 신이 할 일을 줄여나감으로써 결국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아예 존재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디 앨런의 푸념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신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나는 그가 악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신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악의 말은 기본적으로 그가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P.185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還元不可能複雜性, Irreducible Complexity)이란 지적설계론의 지지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주장으로, 생물학적 시스템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보다 단순한 시스템 또는 ‘덜 복잡한’ 조상에게서 자연 선택을 통하여 진화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지적설계론의 핵심 주장이며, 일반적인 과학 공동체에서 거부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지적설계론을 사이비과학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특정 복잡성 개념과 함께 지적 설계론의 양대 핵심 논제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자는 생화학 교수 마이클 비히로, 그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계를 “기본적 기능을 하는 많은 구성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어울려 구성되는 시스템으로, 그 구성 요소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되면 사실상 그 시스템의 기능이 모두 정지하게 된다”고 정의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런 복잡계가 어떻게 진화될 수 있는지 논증했으며, 비히의 주장은 무식의 소치라고 일축한다. 2005년에 있었던 키츠미러 대 도버 지역 학구 소송 당시 비히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해 증언했다. 법정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비히 교수의 주장은 동료평가를 거친 연구논문들에 의해 반박되었으며 과학계에서 광범위하게 거부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195 틈새숭배

틈새의 신(God of the gaps)
현대의 과학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 즉 틈새에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견해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과학이 아직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는 문제를 신에 의한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틈새의 신이라는 단어는 과학이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면서, 종교적인 설명이 서서히 후퇴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사용된다. 태양, 달, 별, 번개 등의 자연현상이 이전에는 신이 만들고 통제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종교적으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천문학, 기상학, 지질학, 우주론, 생물학 등의 영역에서의 관측과 그에 의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해지면서, 자연현상에 대한 초자연적인 설명은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이 말을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의 전도사인 헨리 드러먼드의 The Ascent of Man(1894년)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gaps which they will fill up with God(틈새는 신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라고 표현하면서 기독교도들을 훈계하며, 모든 자연현상은 내재적인 신의 업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권했다. “이것은 진화하는 신이며, 오래된 신학에서의 신처럼 때때로 기적을 보여주는 신보다 훨씬 고상하다.” 20세기에 디트리히 본회퍼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에 의해 수감되어있을 때 쓴 편지에 비슷한 말이 있다. 이 편지가 훗날 공개되었다. 본회퍼는 “…우리의 인식의 불완전함 때문에 신을 틈새를 메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인가? 지식의 경계가 점점 넓어지면(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있을 것이지만) 신은 거기에 밀려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지의 것이 아니라 알려진 것 중에서 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디트리히 본회퍼(독일어: Dietrich Bonhoeffer, 1906년 2월 4일~1945년 4월 9일)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운동가이다.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외국 첩보국(독일어: Abwehr)[1]의 구성원에 의해 진행된 계획에 가담하였다. 그는 1943년 3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결국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1945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의 특수한 사례를 찾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과학적인 방식이다. 현재의 무지로부터 주장을 펼치는 특수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창조론의 근거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의 특수한 사례를 찾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과학적인 방식이다. 특수한 사례에 있어서 현재의 무지한 부분을 찾아 주장을 펼치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P.197
그러나 내 현재의 입장은 창조론자의 그 책략이 (일시적)불확실성을 접한 과학자의 자연스러운 (그리고 사실상 필수적인) 즐거움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표적을 찾기 위해서 무지의 영역을 탐색해야 하는 과학의 방법론적 요구 와 설정된 바에 따라 승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무지의 영역을 탐색해야 하는 ID의 요구가 불행하게 마주치는 지점이 있다.

 

이 점에서 과학은 본 회퍼 같은 노회한 신학자들과 연대하여 소박한 대중 추수적인 신학과 지적설계라는 틈새 신학에 맞선다.


포퍼주의=반증주의

 

가설이나 이론은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지속적인 확인을 받게 되며 반증된 가설이나 이론은 더 우수한 가설이나 이론으로 대체되어 과학이 발전한다는 과학관이다. 반증주의자들은 가설은 반증가능성이 높을수록 더 큰 의미를 지니며, 가설은 반증 시도를 극복하면서 발전되어 점점 더 우수해 진다고 주장한다. 어떤 가설이 '반증가능하다'는 것이 그 가설이 틀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만약 가설이 틀렸다면 어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그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증주의는 윌리엄 휴얼과 찰스 샌더스 퍼스의 연구에서 제기됐으며, 칼 포퍼가 처음으로 《과학적 발견의 논리학》에서 추측과 논박의 인식론으로 표현하고 설명했다.
반증주의의 예로,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가설이 기존의 과학적 방법들에서는 모든 백조를 관찰하고 조사하거나 일정한 수의 백조를 조사한 후 다른 백조들도 흴 것이라고 일반화시켜 과학적 사실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 반면에 반증주의에서는 직접적으로 증명하지 않고 반증 시도를 통해 가설이 설득력을 획득하거나 더 우수한 가설로 대체한다. 즉, 특정 백조의 집단에서 검은 백조를 찾아낸다면 본래의 가설은 '모든 백조가 하얗지는 않다'라는 가설로 대체되고 만약 찾아내지 못한다면 '모든 백조는 하얗다' 라는 가설은 좀 더 설득력 있어진다. 이러한 과정들의 반복을 통해 반증주의에서는 과학이 진보하는 것이다.

 

칼 포퍼 Karl Raimund Popper
출생 1902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빈
사망 1994년 9월 17일 (92세)
잉글랜드 런던


칼 라이문트 포퍼 경(Sir Karl Raimund Popper, CH, FRS, 1902년 7월 28일~1994년 9월 17일)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영국의 철학자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과학 철학자로 꼽히고 있으며, 과학 철학 뿐 아니라 사회 및 정치 철학 분야에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고전적인 관찰-귀납의 과학 방법론을 거부하고, 과학자가 개별적으로 제시한 가설을 경험적인 증거가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방법을 통해 과학이 발전함을 주장하였다. 포퍼는 "귀납이 아닌 연역만으로 과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반증이다."라고 주장하며 '반증주의'라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았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절차를 따른다. 예를 들어 원앙새를 보니 알을 낳았고 이에 따라 '새는 알을 낳는다'라는 가설을 세운다. 물론 여기서는 경험적 일반화를 시도하지 않고 가설을 만들었다. 그런데 만약 타조가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하자(물론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게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가설에 대한 반증사례가 생겨나는 것이고 '모든 새가 알을 낳는 것은 아니다'혹은'알을 낳지 않는 새도 있다'라는 반증이 일어난다. 그는 반증이 가능한 진술과 불가능한 지술을 구분하여 반증이 가능한 진술만 '과학적 진술'로 보았다. 반증가능성은 '경험적으로 반박 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귀납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였지만 반증사례를 무시하고 연구하여 성공한 명왕성발견의 사례, 음파의 속도 문제 해결의 사례등은 반증주의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 반증주의를 곤란하게 만드는 또다른 문제중 첫 번째는 반증불가능하지만 과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이 1/2이다 라는 확률적진술등은 반증이 불가능하다. 또한 과학에 중요한 이론이지만 반증이 불가능 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의 '원거리 작용'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내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반증은 불가능하다. 또한 반증되는 것은 이론의 전체이기 때문에 그 전체의 일부를 수정해서라도 이론 전체를 살릴 가능성이 늘 생긴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특정한 가설을 반증하는 결정적 실험이나 관찰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p.199
열성적인 포퍼주의자로부터 진화를 어떻게 반증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는 도전장을 받은 J.B.S.할데인은 이런 말을 내뱉었다. "선캄브리아대의 토끼화석이면 돼"


P.200
그것은 고전적인 틈새의 신에 대한 추론과 괘를 같이 한다. 나는 전에 그것을 '개인적인 회의심 논증'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다.

 

P.201

영국의 화학자 A.G.케언스-스미스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일곱가지 단서들』이라는 저서에서 아치의 비유하여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회반죽도 바르지 않은 채 대충 깍은 돌들을 끼워 맞춘 아치는 안정된 구조이기는 하지만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하다.

 

P.202
박테리아 편모 얘기를 하는데, 박테리아 편모를 구성하는 수십 개의 단백질 중에 하나만 빠져도 편모라는 기능 수행을 못하기 때문에, 저것은 어떠한 "지적 설계자"가 개입해서 만들지 않은 한, 누적적인 진화로 만들어 질 수 없는 부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위대하신 지적 설계자님은 박테리아 편모를 만들어 주기 위해 밤새 코딱지 만한 단백질 수십개로 조각 맞추기 퍼즐을 하셨을까?  
  불행하게도 2005년 도버 재판에서 나왔듯이, 편모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 10여가지는 TTSS(Type three secretory system)라는 제 3형 분비계의 역할을 따로 수행하고 있다. 즉 누적적 진화라는 관점에서 편모 단백질의 일부는 이미 완벽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so what? 편모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 하나만 빠져도 기능이 아예 없기 때문에 자연 선택의 유리함 (selective advantage)를 가지지 못한다고 우기던 지적 설계론자들의 주장은 허공에 뜬 것이다. 박테리아는 애초부터 편모라는 것을 가지고자 진화한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새로운 단백질이 새로 만들어 졌을 때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그것이 처음에는 TTSS라는 일종의 독성 물질 주사기로 작용하다가, 후에 점진적으로 단백질들이 더 결합하여 편모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편모 뿐이 아니라, 혈액의 응고 같은 예에서도 어이 없는 주장, 즉 생각 자체를 해보기나 했을까라는 의심이 드는 주장들이 많다.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일련의 신호 전달 회로 (signal transduction) 내에 있는 유전자나 단백질의 진화는 한 눈으로 보기에는 마치 그것이 한 번에 생겨나야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착시"는, 누적적인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 중복 (gene duplication) 현상에 의해 훌륭히 설명되고 있으며, 실제로 혈액 응고의 단백질끼리는 굉장한 homology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_-. 그걸 떠나서, 고작 단백질 몇 개가 우연에 의해 추가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 처럼 생각하면서.. 그런 단백질을 조립하는 존재는 그냥 있는 거라고 하니 반칙도 이런 반칙이 또 있나??출처: 예스24; 베히의 <다윈의 블랙박스> 서평

 

P.208

다윈주의는 다른 식으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운다. 진화한 기관들은 뛰어나고 효율적이지만 종종 결함도 보인다. 그것은 기관들이 진화된 것일 경우 예상되는 일이며, 설계된 것일 경우에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설계논증과 달리 다윈주의는 이런 방법으로 우리를 깨닫게 한다. 진화된 기관들은 훌륭하고 효율적이지만, 결함도 있다. 이러한 결함은 진화론의 관점에서는 타당할 수 있지만, 설계주의의 관점에서는 예측될 수 없을 것이다.

 

p.210 

인본원리 : 행성편

눈과 날개, 편모 모터와 면역계를 포기했을지도 모를 틈새 신학자들은 종종 생명의 기원에 남은 희망을 걸곤 한다. 진화의 뿌리가 무생물 화학이라는 점은, 그 뒤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그 어떤 전이 사례들보다 더 큰 틈새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 가지 의미에서 그것은 아주 커다란 틈새다. 그 한 가지 의미란 아주 특수한 것으로 종교 변증론자들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않는다. 생명의 발생은 오직 한 번만 일어났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극도로 비개연적인 사건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뒤의 진화 단계들은 독자적이지만 다소 비슷한 방식으로 지질 시대 내내 수많은 종들에게 되풀이되어 나타났다. 따라서 복잡한 생명의 진화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통계적 추론은 생명의 기원을 논할 때는 적용할 수가 없다. 단 한 차례의 발생(그리고 몇몇 특수한 사례들)과는 달리, 진화를 가능하게 한 사건들은 그다지 개연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틈새 신학자들은 생명의 기원에 마지막 희망을 걸기도 한다. 진화의 시작이 무생물이라는 점은 차후의 전이과정보다 더 큰 진화이며 더 큰 틈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아주 커다란 틈새인 것은 맞다. 그러나 종교변증론자들의  희망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 커다란 틈새의 의미는 높은 비개연성이을 뜻하며, 생명의 발생은 단 한번만 일어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있을 법하지 않다. 그 후의 진화는 독자적인 면도 있지만 다소 유사한 방식으로 오랜 기간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이 경우의 비개연성은 생명의 기원을 논할 때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 즉, 핵심구성요소(DNA 혹은 RNA) 발생 후의 생물의 진화단계는 이러한 핵심구성요소가 단 한번만 발생했다는 점에 비하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p.211

이 구분이 좀 당혹스러울지 모르므로, 이른바 인본 원리를 동원하여 더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인본 원리는 영국의 수학자 브랜던 카터(Brandon Carter)가 1974년에 명명하고 물리학자 존 배로(John Barrow)와 프랭크 티플러(Frank Tipler)가 공동 저술한 책에서 확장시킨 것이다. 인본 논증은 대개 우주에 적용되며, 나도 그렇게 적용할 것이다.

 

인류원리(인본원리)
대폭발 직후의 초기 우주상태가, 탄소를 기반으로 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도록 지극히 예외적이며 확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로 정밀하게 조율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입니다. 인류원리는 영국 켐브리지 대학교 교수이자 이론 물리학자인 존 배로와 미국의 수리 물리학자 프랭크 티플러가 처음 사용한데서 알 수 있듯이, 이 개념을 만들어낸 의도나 목적이 신이라는 설계자의 존재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출처 : 종교전쟁(종교에 미래가 있는가) -장대익.신재식.김윤성


P.215

이 결론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기에 한번 더 말하련다. 생명이 한 행성에서 자연적으로 출현할 확률이 10억분의 1이라고 해도, 그렇게 경이로울 정도로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은 10억 개의 행성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명을 지늰 10억개의 행성 중 하나를 발견할 확률은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늘을 찾으러 나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본원리에 따라) 찾아볼 수 있는 존재는 탐색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엄청나게 희귀한 바늘을 중 하나를 깔고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한 행성에서 자연적으로 출현할 확률이 10억 분의 1이지만 행성이 10억개라면 얘기가 다르다. 물론 이것을 발견할 확률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희박하지만, 우리는 김서방을 찾아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 내가 바로 그 김서방이기 때문이다.


p.216
진화이야기에서 틈새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 중에 생명의 발생과 관련된 틈새는 일상적인 가능성과 위험을 따져보도록 조율되어 있는 두뇌에게는 건널 수 없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진화론에서 틈새처럼 보이는 것들 중 특히 생명의 발생같은 부분은 일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메워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p.217
하지만 이제 이 주제를 시작할 때 언급했던 흥미로운 논점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우리가 방금 생명의 기원에 적용했던 것과 같은 논리에 따라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일반 현상을 누군가 설명하려고 했다고 가정해보자. 즉 가용 행성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에 호소한다고 하자. 모든 종, 그리고 그 모든 종에서 지금까지 목격된 적이 있는 모든 기관이 제 기능을 잘하고 있음은 이미 관찰된 사실이다.


조지 말로리의 정상 정복 사진 한장만보고 인간이 저 곳에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신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고 단정해 버리는 지적 설계론이. 그가 입고 있는 의복과 가방, 가지고 있는 장비들로 보아 어떠한 경로로 어떠한 방식으로 올랐을 거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진화론에 도전하는 것은 적잖게 무모해 보인다.                 - 출처 : 사견  

우리가 방금 생명의 기원에 적용했던 통계학적 논증으로 생물학적 적응을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다윈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행성의 개수가 얼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행운이라는 요소는 처음 이 곳에 생명이 출현한 것을 설명하는데 쓰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지구에 사는 복잡한 생물의 다양성을 결코 설명할 수가 없다. 


생명의 기원 문제는 확률에 달려 있는 문제이므로 개연성이 낮다. 하지만 생물학적 적응은 진화론의 문제이므로 누적적인 일방통로가 개연성이라는 말로 부족할 정도, 즉 필연적이다. 다윈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 중의 하나가 진화를 확률의 문제로 오인하는 점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절대로, 진화의 문제를 통계학적 논증으로 다루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p.224
아마 이렇게 놀랍도록 맹목적인 태도를 보이는 심리적 이유는 생물학자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연선택과 비개연성을 통한 의식 각성을 겪지 않아서일 것이다.

 

톰슨에 따르면 우리는 강도를 그림자로 착각하기보다는 그림자를 강도로 착각하는 성향이 더 강하다. 잘못된 긍정은 시간낭비이나 잘못된 부정은 치명적일 수 있다. 내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먼 우리의 조상들이 환경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도전 과제는 또 다른 인간에게서 유래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유산이 바로 인간의 의도라는 종종 두렵기도 한 설정값이지요.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원이인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해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신의 의도로 일반화했다. 우리가 행위자에게 끌린다는 이야기는 5장에서 다시 하기로 하자.

 

p.226

리스의 여섯가지 상수 같은 숫자값에 의존하기에, 우리 우주는 무한히 팽창하거나, 안정된 평형상태에 도달하거나 팽창이 역전되어 수축함으로써 이른바 대붕괴(big crunch)를 맞이할 운명이다. 일부 대붕괴 모형들은 그 다음에 우주가 다시 팽창하며, 그런 식으로 200억년 주기로 무한 반복된다고 본다.



 

 

 

 

p.234 케임브리지의 막간극 


p.237


웹사이트 "엣지"의 메인 화면


템플턴상(Templeton Prize)


1972년 미국의 사업자이자 투자자 존 템플턴이 제정한 상으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상 중에서 이브라힘 상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금이 수여되는 상이다.

1972년 미국의 사업가이자 투자자인 존 템플턴은 노벨상에 종교 부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존 템플턴 재단을 설립하고 기금 3만 4000파운드를 상금으로 내놓아 제정되었다.


매년 종교 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크게 이바지한 인물들에게 시상한다. 존 템플턴 재단에서 주관하며, 심사위원은 9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리먼 존 다이슨
(Freeman John Dyson, 1923년 12월 15일 ~ )
영국 태생의 미국인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다.

프리먼 다이슨은 1923년 12월 15일 영국 버크셔 주 크로손(Crowthorne)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중에 영국 공군 폭격기 사령부에서 분석가로 일했으며, 전쟁 후 미국의 프린스턴으로 이주했다.

전쟁 후 다이슨은 리처드 파인먼의 경로적분을 이용한 설명과 줄리언 슈윙거와 도모나가 신이치로의 설명이 서로 같은 이론인 양자 전기역학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는 핵추진기를 이용한 우주비행 계획인 오리온 계획에 참여하였다. 시험 기종은 보통의 폭발물을 사용했으나, 우주에서의 핵무기 사용 금지 조약에 의해 계획은 중도에 파기됐다.
2003년 현재, 다이슨은 제러드 오닐(Gerard K. O'Neill)이 설립한 우주학 연구소(Space Studies Institute) 소장이다.




 

 

 

p.239

테야르 드 샤르댕

Pierre Teilhard de Chardin, 프랑스 철학자·고생물학자. 1881. 5. 1~1955. 4.10
인간은 마지막 정신적 통일체를 향해 정신적·사회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이론으로 유명하다. 과학과 그리스도교를 혼합하여 인류의 서사시는 '십자가의 길'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그가 속한 예수회 안에서 제한과 반대를 받았다. 1962년 교황청은 그의 사상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데 대해 간략한 경고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 충성은 의심받지 않았다. 지질학에 관심이 있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테야르 드 샤르댕은 예수회의 몽그레 칼리지에서 10세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정규과목뿐만 아니라 지질학에도 몰두했다. 18세 때 엑상프로방스에서 예수회 수련수사가 되었다. 24세 때 카이로에 있는 예수회 칼리지에서 3년간의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11년 사제로 서품을 받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 군목을 택하지 않고 들것 운반병이 되었다. 그는 전투에서 보여준 용감한 행동으로 전투훈장과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파리의 가톨릭대학에서 가르친 뒤 1923년 고생물학과 지질학 연구 임무를 띠고 중국으로 첫번째 파견을 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중국에 남아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북경원인의 두개골 발견에 참여했고 아시아의 퇴적물, 단층들 사이의 상호관계, 화석의 연대 등에 대해서도 지식을 넓혀갔다. 진화에 대한 생각은 이러한 연구의 자연스러운 산물이었고, 1938년 자신의 기본 저작 〈인간현상 Le Phénoméne humain〉(1938~40)의 초고를 완성했다. 진화를 완성되지 않은 과정으로 보았으며, 진화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용어들을 새로 만들었다. '우주발생'(cosmogenesis)은 인간이 중심인 세계의 발전, '정신발생'(noögenesis)은 인간정신의 성장, '인간화'(hominisation)와 '초인간화'(ultra-hominisation)는 인간화의 단계를 가리킨다. 그밖의 저작으로는 〈인간의 상황 L'Apparition de l'homme〉(1956) 같은 철학 에세이들과 주로 포유류의 고생물학에 관한 과학연구서들이 있다. 1946년 프랑스로 돌아왔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가르치면서 철학 책을 출판하겠다는 희망을 이루지 못한 채(그의 주요저작은 모두 사후에 출판되었음) 미국으로 갔다. 생애 마지막 몇 년을 뉴욕 시 웬너그렌 재단에서 보냈고, 이 재단을 위해 남아프리카로 2차례의 고생물학·고고학 탐사여행을 했다.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신학자들은 절대명령에 따라 그렇게 선언되었기에 합리적 논증이 도달할 수 없는 인식론적 안전지대에 자신들이 들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합리적 논증이 유일하게 용납될 수 있는 논증이라고 말한단 말인가?


인식론적 안전지대는 절대명령에 의해 합리적 논증에서 열외되는 지역이며 신학자들은 그 구역에 위치해 있다. 그들은 누구길래 신의 용인을 받아, 인식론 허용지대와 인식론적 안전지대를 왕래한단 말인가?

 

과학적 논증 말고도 앎의 방식은 다양하며, 신을 알고자 할 때 전개해야 하는 것은 그런 다른 앎의 방식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에 의한 논증말고도 인식의 방법은 다양하다. 신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 다른 앎의 방식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에 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임이 드러났다.  케임브리지 학회에서 몇몇 토론자들은 마치 다른 사람이 말을 하는 것처럼...

 

나는 3장에서 환영과 환각을 다루었지만, 케임브리지 학회에서는 거기에 두가지 사항을 덧붙였다. 첫째, 신이 정말로 인간과 대화를 한다면, 그 사실 자체는 결코 과학의 바깥에 놓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3장에서 환영과 환각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케임브리지 학회에서의 경험은 거기에 두가지를 추가하게 만들었다. 첫째, 신이 정말로 인간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그 사건이 과학의 열외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본래 체류하는 곳이 다른 어떤 세계든 거기에서 별안간 튀어나와 우리 세계로 요란하게 뚫고 들어오며, 인간의 뇌는 그 메세지를 수신한다. 그 현상이 과학과 아무 관계가 없단 말인가?

신이 어딘가에서 보내는 메세지는 우리 세계로 비집고 들어와서 인간의 뇌에 도달하는 것일 것이다. 그 현상이 과학과 전적으로 무관하단 말인가?

 

p.240

둘째,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시에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신은 절대 단순한 존재일 리가 없다. 그 엄청난 대역폭을 생각해보라! 신은 뉴런으로 이루어진 뇌나 실리콘으로 이루어진 CPU를 갖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있다는 권능들을 정말 지니고 있다면, 그는 우리가 아는 가장 뛰어난 두뇌나 가장 뛰어난 컴퓨터보다 훨씬 정교하고 계획적으로 구축된 무언가여야 한다.

 

헤라클레스를 가볍게 이기는 장사라면 울퉁불퉁한 근육질에 체중이 엄청나지 않아도 될지는 모르지만, 여튼 헤라클레스보다 힘이 세야하는 건 사실이겠지.

 

P.243

그것은 동네 무신론자라는 조롱과 궤를 같이 한다. 또 "당신이 하하하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길고 하얀 턱수염을 지닌 노인을 더 이상 하하하라고 믿지 않는다." 라는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세 가지 농담은 내가 1960년대 말에 미국에 살 때, '법과 질서'가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가리키는 정치인들의 암호였던 것처럼 무언가 다른 것의 암호다.

 

P.244 

5th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