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전환시대의 우상과 이성"
닉슨 독트린과 주한 미군 철수
미국에 대한 한국의 지난 25년간의 관계를 어떻게 성격지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타심과 나쁘게 말해서 예속적 생존이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있었다면
국제사회에서 떳떳한 국가·국민·민족으로 존경받긴 힘들 것이다.
미군 감축의 발표와 함께 이번에는 일본 군대에 눈을 또 돌려야 하게 되는 것도
'진정한' 자주의식의 결핍의 결과 아닌가 한다.
-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1974. 창작과 비평사.
제7대 대통령 선거
1971년 국가예산은 5242억원이었는데, 박정희는 이 선거에서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600~700억원을 썼다.
(600억원은 김종필, 700억원은 강창성의 증언)
-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1992. 동아일보사
리영희의 언론 비판
한국 국민은 닉슨의 중공 방문에 하늘이 무너질듯 놀랐다.영원한 적 일 수 밖에 없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던 한국 국민은 순간부터 한국의 안위와 국가적 방향과 자기 이해관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만일 요즈음 앞을 다투어 극동정세의 해빙의 불가피성을 알고 있었음을 자랑하는 지식인과 언론이 평소 그 소임에 10분의 1만 충실했더라도 국민들은 국제정세 진전의 어느 정도의 낌새라도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은 한마디로 반공 이외의 딴 가치나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 미국 철수에 관한 기사를 6개월 동안이나 보도하지 못하고 있던 언론기관은 느닷없이 공식발표된 뒤에 일어난 국민의 불안과 동요에 대해서 그 책임을 통감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권력의 압력에 대해서 그 전에도 그렇고 그 후에도 이나라의 언론은 조금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리영희.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전환시대의 논리. 1074. 창작과 비평사.
기자는 수습또는 견습이라는 '미완성'의 자격으로서도 출입처에 나가면 위로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은행총재로부터 아래로는 국장, 부장, 과장들과 동격으로 행세하게 된다. 그들이 취재 대상의 하부층과 접촉하는 기회는 오히려 드물다. 장관이나 정치인이나 사장, 총재들과 팔짱을 끼고 청운각이니 옥류장이니 조선호텔 무슨 라운지니 하면서 기생을 옆에 끼고 흥청댈 때, 그 기자는 일금 1만8천원 또는 고작해서 일금 3만2천원이 적힌 사내 사령장(謝令狀)을 그날 아침에게서 받을 때의 울상을 잊고 만다. 점심은 대통령초대의 주식(晝食), 그것이 끝나면 은행 총재의 벤츠 차에 같이 타고 무슨 각(閣)의 기생 파티에서 최신 유행의 트로트 춤을 자랑하고 이튿날 아침은 총리니 국회의장의 '자네만 오게'라는 전화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참석하는 꿈이 남아 있다. 이런 기회는,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지만 출입처에 나간다는 기자에게는 반드시 있다.
(사령장: 임명, 해임 따위의 인사에 관한 명령을 적어 본인에게 주는 문서. 예: 귀하를 정치부 수습기자로 근무할 것을 명함, 수습 급여 3만2천원을 급함)
-리영희.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전환시대의 논리. 1074. 창작과 비평사.
어제 수습기자로서 선배기자들의 무력과 타락과 민중에 대한 배반을 소리 높이 규탄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골프는 결코 사치가 아니야, 건전한 국민오락이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의 현 체제의 수익집단인 지배계층과 자기를 동일시하게 된다. 여정을 걷는다. (…) 그러다가 논설위원이 되거나 평론의 한 편이라도 쓸 때면 '학생의 본분은 공부만 하는 것, 현실은 정부에게 맡기기를,' 따위의 글이 아무런 내적 저항감도 없이 나오게 된다.
-리영희.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전환시대의 논리. 1074. 창작과 비평사.
리영희, 언론계에서 쫓겨나다.
72년 1월부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자 겸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ㅣ.
일반인의 공산권 관련자료 접근이 통제되던 시절,
리영희는 기자로서, 교수로서 정부기관의 중국(중공) 및 북한 관련 자료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 유시춘, 1970-90년대 현대사 재조명 실록 . 경항신문, 2003년
박정희의 전라도 죽이기
언젠가 북한에 관한 드라마를 보던 어린 것 가운데 하나가 '김일성이는 머리에 뿔이 나 있다던데?' 하는 의문의 반응을 보였을 때처럼 나를 놀라게 한 일은 없다. 악한 것은 악한 것으로, 선한 것을 선한 것으로 그려내는 선전에 이의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일체를 흑과 백, 천사와 악마로 양단해버리는 식의 선전은 거꾸로 우리 국민의 과학적 사고능력과 이성을 마비시킨다. 또 모든 사물에는 가치체계의 차이에 따라 선악의 기준도 다를 수 있다는 정도의 '자유스러운 사고능력'마저 박탈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와 같은 흑·백식 사고방식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 사회와 국민 사이에 사고와 가치관의 획일주의의 굴레를 씌우게 될지도 모른다.
- 리영희. 텔리비젼의 편견과 반지성. 전환시대의 논리. 창작과 비평 1974
내가 밤에 택시를 타고 가다 목격을 한 일인데, 같이 합승을 한 어느 경상도 친구가 운전수와 실랑이가 붙었는데 하는 말이
"니 내 깅상도 말하는거 안들리나? 그러는 거야 (웃음). 그때가 벌써 72년경인데 그때 이미 그랬다고.
-리영희, 김동운, 이수강. 인터뷰/리영희 선생을 찾아서: 20세기 자본주의는 승리하였는가?. 그 날에서 책 읽기. 1999
이 때문에 당시 서울시 본청 청사 안 어느 부서에 들러도 하루 종일 경상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서울시청이 '경상남북도 광하문 출장소'라는 쑥덕공론이 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이두석.문화일보편집국장의 칼럼. 문화일보. 1995
경상도와 전라도에 투자한 액수가 10대1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원적을 전라도로 옮길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전라도 사람들이 불쌍했기때문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정석. 분단과 반민주로 본 한국정치 이야기 (上). 무당미디어. 1997
일본인 기생관광 붐
'외화와 일본인'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구두를 벗어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야 아랑곳 없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데는 오히려 이쪽이 압도되고 만다. 엘리베이터의 단추를 닥치는대로 눌러보던 한 친구가 '고레 고쇼오데스까?(이거, 고장이요?)라고 하고 다짜고짜 일본 말로 묻는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인이 한국 속에 있는 것인지 내가 일본엘 와 있는 것인지 순간 착각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이 친구가 엘리베이터를 내려서자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한국인 남녀들이 연상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아리가도오 고자이마쓰'(고맙습니다.)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상전을 맞이하는 졸개들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비굴한 웃음들이었다. (···)
며칠을 두고 이런 광경을 수없이 보고 겪고 나니 ' 아 언제부터 이 나라가 다시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들었다.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1974. 창작과 비평
정부나 국가가 그 여성 국민에게 통행금지 면책특권을 주면서까지 외국인 사나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딸을 바치고 그 댓가로 부자가 되는 아비와 얼마나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돈으로 국민이 얼마나 부해지며, 국가가 얼마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국민의 도덕적 타락, 비인간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서는 경제발전을 못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서까지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외화를 벌어야 하는 것인가.(···)
이 통에 10여년을 지켜내려오던 '4.19의 4월'이었던 달이 금년에는 갑자기 '관광의 4월'로 탈바꿈했다.
어제도 오늘도 신문에는 일본의 무슨 재벌, 무슨 사장이
서울과 지방의 어디어디에 몇 층의 호텔 건설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자랑스럽게 보도되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우울해지는 것이다.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창작과비평, 1974.
「전환시대의 논리」 탄생
나는 그 책을 밤새워 읽었고, 그후에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그 책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지닌 상식에 어떤 것을 보태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네 머릿속에 상식을 버려라, 네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은 허위의식, 미신들이다. 그 허위의식, 미신을 버려라.
그러한 미신을 주입한 우상들의 본질을 꿰뚫는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라."
따라서 그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기쁨에 앞서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려면 먼저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을 상식에 비추어 의문을 제기하고
깨뜨릴 것은 과감하게 깨뜨려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기쁨이 아니라 진실을 안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혁신시켜야 한다는 용기와 의무감이 생기기 땜이다.
- 김세균. 리영희론. 우상과의 싸움
- 리영희. 인간만사 새옹지마. 1991. 범우사
74년 긴급조치법 1호에서 9호까지, 그리고 연타로 터진 울릉도 거점 간첩단사건, 문인간첩단사건,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 등으로
사회가 잔뜩 얼어붙고, 서슬 푸르고 흉흉하던 그해 초 여름에 그의 이 첫 저서가 간행되어 대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만한 충분한 까닭은 있었다.
바로 그 전환시대의 전환시대적 요소에 주로 서슬퍼런 칼을 들이댄 것이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었고
끝내 1975년 초봄, 황사 불던 날 무더기 처형까지 감형되는 속에,
정작 바로 그 전환시대의 논리를, 그 불가피성.불가역성을 정정당당하게 논파한 저서는 시중을 휩쓸고 있었으니
이것이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호철. 산울리는소리: 이호철 문학비망록. 정우사. 1994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해 당시 학계의 빛나는 신성(新星)이었다는 서울대 교수 노재봉이 추천사를 썼다는게 흥미롭다.
지식인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탄압에 굴복하는 지식인과 탄압에 저항하는 지식인이다.
전자의 지식인에겐 권력과 금력이 따르지만, 후자의 지식인에겐 고난과 시련이 따른다.
훗날의 역사가 말해주지만 노재봉이 전자라면 리영희는 후자였다. 리영희는 1974년에 쓴 「기능분업주의」를 경계하며 라는 글에서
이미 자신의 그런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리영희.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강준만. 개마고원. 2004
리영희의 민주회복국민회의 참여
마치 민주체제로서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대처할 수 없는 것처럼 강변하면서 우리의 당면한 제 조건을 빙자하여
민주주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려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정부가 곧 국가라는 전제적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며 반정부는 반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반정부 행동으로 말미암아 복역, 구속,. 연금 등을 당하고 있는 모든 인사 등을 사면, 석방하고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회복시키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한승헌 . 불행한 조국의 임상노트 : 정치재판의 현장. 일요신문사.1997 재인용
학도호국단과 사회의 병영화
'학도호국단'법으로 대학교는 군사훈련소로 변했다. 교수는 자기가 강의하고 있는 교실에 어떤 자가 끼여들고 있는지 눈치를 살펴야 했고,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두려움에 움츠러 들었다.
그런 판에는 으레 재주 부리는 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파쇼정권과 일인영구독재를 옹호변론하느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날뛰는 교수, 지식인들이
대량생산되었다. "학문 깊고 덕망 높은 저명인사"들이다. 그들은 온갖 요사스러운 궤변으로 대중을 현혹했다. 무민혹세의 시대가 온 것이다.
온 세상에 논리는 간데 없고, 도덕은 얼굴을 돌렸으며, 정의는 오로지 '힘의 정의'가 난무했다.
이에 대항해야 할 언론은 권력의 강간을 당했다. 신문과 방송, 출판과 표현의 자유는 목을 졸렸다. 단말마의 신음소리가 사회에 가득 찼다.
이른바 '언론인'들이라는 많은 직업인들이 그 직업적 자리를 이용해서 권력의 시녀가 되어 알몸으로 아양을 떨고 있었다.
화간(和奸)이라 하기에조차 너무도 구역질 나는 타락이었다.
-리영희.역설의변증. 두레. 1987
리영희, 대학에서 쫓겨나다.
박정권은 77년 2월 28일 교수재임용제도를 강행해 전체 교수의 4.7%에 해당하는 460명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물론 여기엔 리영희도 포함되었다.
졸지에 해직교수가 된 리영희는 해직 6개월만인 1977년 9월 창작과비평사에서 「8억인과의 대화: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이라는 책을 펴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하여 우리 정부도 중공을 비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식명칭도 사용하여 종래의 제한조치를 일부 해제하는 등 이해성 있는 정책으로 전환한 지도 몇 해가 되었
다.
(…) 체제가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하더라도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천국도 아닌 반면 지옥도 아니다.
-리영희.「8억인과의 대화: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창작과비평. 1977
『우상과 이성』의 탄생
이 책은 한번도 의심받지 않았던 당시 한국사회의 도그마(우상)들에 대한 이성이란 이름의 도전장이었다.
-한국일보
공산주의의 준동에 대한 미국의 聖戰으로만 이해됐던 베트남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되었고
거론조차 금기시되던 중국 모택동 정권의 수립과정과 통치이념에 대한 긍정적 검토가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저자의 표현대로 '지식인들의 자기부정적 직무유기의 시대'에 출판된 이 책이 지식인 사회, 특히 대학가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
었다.
대학가 서점에는 이 책을 찾는 대학생들이 줄을 이었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던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 고뇌하던 대학생들에게 이 책은 의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받아들여졌고
민주화 투쟁의 이론적 지침서가 되었다.
-리영희, 삶을 밝히는 책. 한국일보.1993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리영희, 우상과이성, 한길사. 1977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노신의 글 가운데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단단한 방 속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 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궁리하면서 고민하는 상황의 이야기가 있다.
방 속의 사람은 감각과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까닭에 그 상태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뿐더러 자연스럽게까지 생각하면서 살아(죽어)가고 있다.
그런 상태의 사람에게 진실을 보는 시력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되살려줄 신선한 공기를 주는 것은 차라리 죄악스러운 일일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말이다.
-리영희, 우상과이성, 한길사. 1977
70년대 대학생에게 리영희는 아버지였다.
그래서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그를 한국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썼다.
···
그는 감방 이불에다 어머니의 빈소를 마련하고 ···
감방에서 울었다. 소리죽여
- 고은, 만인보 제 12권, 창작과비평. 1996
불효자의 변 : 현대의 충효사상에 대하여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지 못했고 현재 살아계신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하지 못하는 불효자이다.
(...)
효 사상은 그 도덕이 확립 수용되었던 시대에서
개인적인 권리.의무 관계, 가치관의 총체, 종합적 체계를 구성했던 것이다.
삼강의 하나이며 오륜의 일부이며 전체의 유기적 일부분이다.
(...)
그 시대의 소유관계, 물적조건을 하나의 뿌리로 해서 생겨난 도덕이지,
자기완결적, 분리독립적일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효의 위계질서의 확대된것이고 절대화시킨 것이 군신관계의 忠이며,
性的 생활표현이 男女有別이며, 男尊女卑이다.
忠, 男女有別이 그렇듯이
孝사상 역시, 從的관계가 근간을 이루는 예속질서이다.
그런데,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수평적, 평등질서이고,
따라서, 어용적, 예속적인 가치관이 제도화된 "孝 思想"이 상응하기 어려운 점이 이때문이다.
효는 아름다운 인간감정의 행동적 표현이다.
효를 다하지 못한 필자같은 인간은 죽는날까지 그 못다함을 원한으로 품고 고민할 것이다.
필자도 자식들에게 효의 도덕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 사회가 강조하는 신앙교육,
그것만이 아닌 더 중요한 근본적 사실을 아울러 생각해보도록 권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바로 나의 불효심의 탓인지도 모르겠다.
-리영희, 우상과이성, 한길사. 1990
검사가 '반공법 위반이다'하면 위반
북한대표가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우리말로 했다는 것이 작년 겨울 한때 화제가 되었지만,
(...) 이데올로기 정치를 떠나서 같은 민족으로서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리영희, 역설의 변증: 통일과 전후세대와 나, 두레. 1987 → 반공법위반
정치는 내가 할테니 너희는 농사만 지으면 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지 않은가,
우리 농민은 너무도 오랫동안 복종과 순종만 해온 것 같아, 생각하고 저항할 줄 아는 농민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네
→ 반공법위반
박정희는 죽었건만
나라의 어려움이 과연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의 욕구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그 욕구를 억제하는 것으로 이익을 삼는 사람들의 권력욕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장기적인 안목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 역설의 변증. 두레.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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